둘째 아이는 참 자주 아팠던 녀석이었다. 게다가 예민했던 건지 엄살이 심했던 건지 조금만 아파도 큰 병인 것 마냥(내 기준이 아니라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서 크게 아프지 않다거나 약하게 왔다고 분명히 얘기함) 칭얼대어서 한 달에 1/3은 이런저런 약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커가면서 점점 잔병치레도 줄어들어서 175cm가 훌쩍 넘는 중학생 형으로 자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자잘하게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15살이 넘는 지금까지 크게 아프거나 수술을 받은 적은 없어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 태아보험으로 들었던 보험의 실명을 4살이 될 때까지 바꾸지 않아 보험회사에서 혹시 아이가 살아있냐고 확인하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변경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를 외쳤던 그때처럼 격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신체적 건강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기를 함께 기도한다
접시꽃이 새삼스럽게 예쁘다고 느낀 날도 어린 둘째와 함께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열 때문에 밤새도록 짜증 내는 아이 옆에서 한숨도 못 자고 병원으로 오픈런 한 날. 병원 뒷문으로 나오는데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한 접시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화단을 제대로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몇 개의 화분에서 소소하게 화려함을 뽐내며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상가 관리인이 정성스럽게 가꾸신 듯 보였다. 큰 키에 누가 더 예쁜지 자랑이나 하듯 줄지어 얼굴을 드러낸 모습이 아름다워서 어젯밤의 시름도 눈곱만 떼고 겨우 나온 내 몰골도 잊어버리고 접시꽃 감상에 취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따스한 봄에서 뜨거운 여름으로 넘어갈 때마다 많은 접시꽃을 봤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고된 육아로 힘들었던 날 위로하던 병원 뒷길의 접시꽃처럼 강렬하지는 않더라.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그때의 접시꽃을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렸던 것 같다.
접시꽃, 픽사베이
접시꽃, 학명으로는 Alcea rosea, 영어명은 Hollyhock.
Alcea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alkē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힘’과 ‘건강’을 의미하여 접시꽃은 치유와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하늘로 쭉 뻗어 2m 이상 자라며 크고 화려한 꽃이 힘과 활력을 나타냈다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약초 관련 서적과 문헌에 소개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약초로 사용된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접시꽃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 남서부 지역에서 2000년 넘게 재배되었는데 고대 동서 교역로를 통해 중동 지역으로 먼저 전해졌고 동양의 이국적인 식물은 이슬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렇게 이슬람 세계에 유입된 접시꽃은 다시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신성한 곳으로부터 왔다고 하여 ‘홀리호크’(hollyhock)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된다. 접시꽃이 속한 아욱과의 식물을 앵글로 색슨어로 호크(hoc)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무렵 ‘촉나라의 아욱꽃’을 뜻하는 촉규화(蜀葵花)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자라기 시작했다. 접시꽃은 동의보감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한방약재로 사용하며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는 식물로 다뤘다. 꽃과 뿌리는 해독, 소염, 진정 등의 효능이 있어 기침, 가래, 목의 염증 등 호흡기 질환을 완화하고 소화 불량이나 변비에도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잎은 상처 치유를 돕는 연고로 활용되었다고 하니 필요 없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또한 꽃을 차나 탕약으로 끓여 마시는 민간요법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고 하니 관상용으로 약용으로 민가의 정원에서 사랑받으며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겠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접시꽃 추출물이 보습과 항염 효과가 뛰어나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문 앞을 지키는 접시꽃, 아이스톡
여러 문화권에서 접시꽃은 상징적인 의미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악령과 불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집 앞이나 정원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자라는 모습은 신성하고, 우아하고 큰 꽃은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 보호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에서는 요정 세계와 연결된 꽃으로 여겼다니 참 아름답고 판타지한 이야기이다. 요정이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정원, 마법적인 힘을 발산하는 신비로운 꽃. 기다란 줄기와 화려한 꽃은 이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를 잇는 다리로 요정들이 그 꽃 주위에서 모여든다고 믿었단다.
접시꽃 전설을 따라 지어진 전래동화도 있다.
아주 오래오래 전 꽃 나라의 왕인 화왕은 자신이 살고 있는 궁궐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큰 화원을 만들고 세상의 모든 꽃들을 다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꽃들은 화원으로 모이라 어명을 내리자 꽃들은 신이 나서 하나둘 궁궐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소식은 멀고 먼 서천 서역국의 모든 꽃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서역국에는 궁궐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서역국의 꽃들을 관리하던 꽃 감관이 있었는데 하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소식이 퍼지고 만 것이다. '내일까지 도착하는 꽃들만이 화왕의 궁궐 화단에 들어갈 수 있데' 라며 화왕의 궁궐로 우르르 떼 지어 달려갔다. 자리를 비웠던 꽃 감관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정성스럽게 돌보던 모든 꽃들이 떠나 버린 것을 알고 큰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마음 아파했다. 텅 빈 화원에서 홀로 남아있는 접시꽃을 발견하고 왜 떠나지 않았는지 묻자 '꽃 감관님의 집을 지켜야 하는데 저까지 떠나면 집을 누가 보나요?'라고 대답했고 그 후 접시꽃은 꽃 감관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접시꽃을 대문을 지키는 꽃으로 삼았다는 전설.
무궁화, 픽사베이
접시꽃을 그릴 때 잎사귀를 그리기 전까지는 무궁화를 그리고 있냐고 주변에서 묻고는 했는데
무궁화와 접시꽃은 같은 아욱과(Malvaceae) 히비스쿠스 속(Hibiscus)에 속하는 식물로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두 꽃은 모두 5장의 큰 꽃잎과 중앙에 길게 돌출된 꽃술이 특징으로 꽃의 형태가 비슷하다. 무궁화와 접시꽃은 다양한 색상의 꽃을 피우는데 무궁화는 일반적으로 흰색, 분홍색, 자주색 등이 있으며 접시꽃 보다 꽃의 크기가 작다. 접시꽃은 빨간색, 주황색, 분홍색,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며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이 특징이다. 꽃잎도 무궁화 보다 더 크고 둥글고 넓게 퍼진 형태이며 꽃 중앙도 깊고 선명하다. 무궁화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며 한 번 꽃을 피우고 나면 다시 피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아 한국의 인내와 강한 정신을 나타내는 국화로 지정되었다. 접시꽃은 일반적으로 여름에 집중적으로 꽃을 피우며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운다.
Hollyhocks (1739), Elizabeth Blackwell, artvee
식물학자이자 화가인 엘리자베스 블랙웰은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녀가 그린 500 여 종의 식물은 매우 사실적이고 꽃의 구조와 특징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1737~1739년 사이에 시리즈로 연재된 A Curious Herbal은 의사와 약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한다.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동판에 그림을 새긴 후 이를 인쇄하여 책의 삽화로 완성한 작품들은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지녔다.
Dark Single Hollyhocks (1890), James David Smillie, artvee
제임스 데이비드 스밀리는 미국의 동판화 작가이자 조각가, 유화 및 수채화까지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서 동판화 작가로 유명한 아버지께 어렸을 적 동판화를 배운 영향이 드로잉과 조각가등 다양한 예술매체에서 활동하다가 추후 에칭매체로 돌아오게 했던 것 같다.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에서 최초의 에칭 수업을 진행하며 70살이 넘는 나이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스밀리의 어둡고 차분한 색조의 접시꽃은 클로즈업 형식으로 표현하여 꽃잎의 섬세한 결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며 깊이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Vase of Hollyhocks(1886), Vincent van Gogh, wikiart
해바라기로 유명한 반 고흐도 접시꽃을 그렸다는 사실!!! 1886년은 프랑스 이주하여 네덜란드에서의 어두운 색조로부터 벗어나 밝고 다채로운 색감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 속 접시꽃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림은 배경은 단순하지만 텍스쳐가 느껴져 꽃병과 접시꽃이 더욱 부각된다. 붉은 듯 검붉게 피어오르는 꽃의 색채는 풍부하면서도 강렬한 톤으로 어두운 녹색 배경과 대비 효과가 두드러지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담한 스트로크로 쭉 뻗어있는 접시꽃의 힘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Hollyhocks and Sunlight (1902) Charles Courtney Curran, artvee
찰스 커트니 커란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의 휴식이나 여유로운 풍경을 그렸다.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에게 평온함과 위안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접시꽃과 햇빛>은 밝은 햇살 아래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다채로운 색조로 활짝 피어난 접시꽃과 여성의 하얗고 밝은 블라우스가 화사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접시꽃에 둘러 쌓여 향기를 음미하는 듯한 여성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열결 되어 있음을 우리 삶 속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시간을 보여준다.
<지베르니의 접시꽃>
언젠가 파리에 갈 계획이 있다면 그때는 꼭 몽생미셸을 일정에 넣을 것이다. 따스한 날 맑은 날씨에 화사한 꽃들이 만발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날씨가 조금 흐려도 비가 내리더라도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지베르니는 운치 있고 아름다울 것만 같다.
The Garden, Hollyhocks(1887), Claude Monet, wikiart
모네는 정원을 '자연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로 보았다. 이는 그의 예술적 목표와도 일치하여 정원을 가꾸는 자연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창작의 영감을 찾고 그림을 그렸다. 자연의 세밀한 변화에 대한 감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 자연의 아름다움, 변화하는 빛, 색채의 조화를 예술로 표현했다. <The Garden, Hollyhocks>는 그가 가꾼 정원의 일부를 그린 작품 중 하나로 접시꽃 사잇길로 꽃을 들고 걸어오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접시꽃은 높이가 크고 화려한 색상으로 모네의 작품에서 중요한 시각적 역할을 하며 등장한다.
Hollyhocks (by 1911), Frederick Carl Frieseke, www.museothyssen.org
Hollyhocks (by 1912), Frederick Carl Frieseke, google art&culture
클로드 모네의 집 바로 옆에 살았다는 프레드릭 칼 프리세케. 클로드 모네와 친분은 없었고 '인상파 화가 중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아마 르누아르뿐'이라고 말했다. 프리세케는 이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고 지베르니에 거주하며 자연과 빛을 다루는 인상파 기법을 공유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프리세케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여성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다. 1911년, 1912년 지베르니 정원의 접시꽃을 담은 그림을 비교하며 한번 볼까?
1911년작은 접시꽃의 형태와 구조에 집중하여 꽃잎의 디테일과 표면 질감과 색조를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했다. 정적인 느낌과 함께 빛의 반사와 꽃의 세부가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한 톤이다. 중앙에 위치한 여성은 아마도 그의 아내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그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1912년 작은 꽃의 형태와 색채를 더 자유롭게 묘사한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의 기법을 '만약 당신이 햇빛 속에서 꽃무리를 보고 있다면, 다양한 색깔의 반짝이는 점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리세요'라고 전했다고 한다. 점으로 찍은 듯 자유로운 붓질과 다채롭고 생동감 있는 색조는 꽃과 배경이 서로 어우러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