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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라해 Nov 16. 2024

아빠는 이런 아들 괜찮았어?

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아빠, 아들을 키워보니 어땠어?

이마트에 장  보러 갔을 때 조용히 2층에 있는 장난감 코너에 가서 레고 사달라고 떼쓰면서 울었을 때 얼마나 짜증 났을까. 이건 짜증 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 인정할게. 뜨거운 한약을 돌리고 있는 전자레인지. 그때 우리 집 전자레인지는 엄청 높은 곳에 있었잖아. 다섯 살인 내 손이 닿는 곳이 아니었는데, 내가 기어코 스스로 꺼내보겠다고 의자에 올라가 한약을 꺼내다가 그 뜨거운 한약을 얼굴에 부었을 때 아빠는 어땠어? 나를 업고 미친 듯이 병원까지 뛰어갔던 아빠의 심장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해. 어린이 집에서 짝사랑하는 여자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어린이 집에 있는 놀이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점프하다가 양 쪽 다리에 금이 가서 병원에 갔을 때 아빠는 어땠어? 이놈의 아들놈이 벌써부터 여자를 좋아하는지, 그렇게 이성에게 어필하는 게 아닌데 가르칠 게 너무 많다고 한숨 쉬지는 않으셨는지요.


어려서부터 천식이니 아토피니 다른 애들에 비해 약하게 태어난 아들을 볼 때는 어떤 마음이었어? 나 긁게 하지 않을라고 엄마랑 아빠가 털장갑과 내복을 바느질로 이어 붙였었잖아. 그때 그 내복 너무 입기 싫었는데, 그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제는 이해가 가. 내가 열이 너무 많이 나서 한숨도 못 자고 새벽에 물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줄 때 아빠 마음은 어땠어? 해가 뜨면 출근해야 하는데, 춥다고 이불 덮으려고 하는 아들놈 억지로 열 내리려고 닦아 줬었는데 열이 조금 내려 그 모습 보고 안심하고 출근하셨나요.

친할머니 장례 마친 그다음 주에 교회 가면서 내가 아빠한테 응급구조학과 포기하고, 신학대 가야겠다고 말했었잖아. 그때 마음은 어땠어? 민창이에게 육체의 아버지는 본인이지만, 평생 동안 죽어서도 살아서도 아버지가 되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신학대를 선택한 나를 응원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아빠, 아빠는 이런 아들 괜찮았어?


다른 애들에 비해 겁도 많고, 섬세하고, 눈물도 많은 아들이라서 답답하고 속상하지는 않았어?

초 중 고 학교에서 준 가정통신문에 부모님과 내 꿈을 적는 칸. 아빠가 바라는 꿈에 적는 장군이라는 직업과 내가 꿈을 직접 적는 칸에 장군이 아닌 다른 직업, 때로는 직업을 쓰지 않을 때 속상하지는 않았어? 아빠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었던 거 같아. 내가 흘리는 눈물 보다, 남이 흐르는 눈물을 더 싫어했던 거 같아. 그리고, 나는 꿈이 있었어. 그래서 학교에서 정해준 그 작고 작은 칸에 내 꿈을 적기에는 그 칸이 너무 작았어. 아토피가 너무 싫었고, 초등학교 때 매일 밤 아빠가 내 몸에 있는 상처에 뿌리는 목초액은 너무 싫었어. 냄새가 고약해서 초등학교 때 내 몸에 목초액 냄새가 나서 친구들이 놀릴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이 넓은 세상을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을 너무 알고 싶었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싶었어. 그래서 선택한 신학대는 아직도 후회하지 않아. 이곳을 왔기 때문에 글이라는 꿈을 찾았고, 평생을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만들었어.


아빠, 아빠는 이런 아들 괜찮았어?

나는 그런 아빠라서 괜찮았어. 아니, 아빠가 내 아빠여서 감사했어. 때로는 너무 엄하고, 아빠의 잔소리가 너무 싫었는데.

화를 내긴 했지만, 레고를 사 와서 같이 만들었었던 그 저녁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나를 업고 뛰어가는 아빠의 등이 얼마나 편하고 쉼이 됐었는지 몰라.

중국선교 다녀온 나랑 누나에게 닌텐도를 깜짝 선물했을 때 아빠가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

신학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 응원해 준 아빠의 응원이 얼마나 고마웠었는지.

연애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이쁘냐고 물어보는 아빠가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

헤어졌다고 이야기했을 땐 세상에 여자는 많다고 위로하는 아빠의 그 담담함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 그래도 나에게는 아빠가 내 아빠여서 다행이야.





아빠 엄마 in제주도, 5월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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