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이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펐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김경주 -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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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었을 때 학교 선배 형이 나에게 보낸 시였다.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문장이다. 물이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물이 흘러가게 한다. 하늘이 구름이 흘러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하늘을 흘러가게 한다. 흘러가는 바람에 꽃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꽃이 바람에게 흘러가는 방향을 선물한다. 어디에 집중하냐에 따라 주체가 달라지고 의지와 생명력이 생긴다. 시 앞에 나오는 슬픔이 단순히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주체로 보인다. 주체적으로 혼자 있는 슬픔을 본인이 오래 슬퍼하다 보니 주체가 되어 삶의 의지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던 물고기와 햇볕 그리고, 꽃은 본인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 이상 햇볕은 스스로 살 수 없고 바람에 기대어 살아야 하고, 꽃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간다.
결국 슬픔은 지나가야 한다. 오랫동안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슬픔에게 느끼는 일체성을 끊어버려야만 슬픔도 그냥 지나간다는 것이다. 슬픔은 내가 만든 생명체가 아니고, 내 몸의 일부가 아니다. 찾아오면 잠시 몸을 빌려주고 바람 따라 물 따라 하늘 따라 흘러갈 수 있게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시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슬픔은 내 몸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결국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방법은 내 몸에 찾아온 슬픔을 최선을 다해 슬퍼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슬픔이 나와의 일체성을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이다. 슬픔은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슬픔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안에 가득 들어와 장기간 살고 있는 슬픔들이 너무 많다. 주체로서 나를 살아가는 방법은 슬픔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슬픔을 하루빨리 온전히 마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