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k-장녀'를 아는가? k-장녀는 대체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스스로 크나큰 책임감을 짊어진다고 한다. 또한, 동생들과 비교해 충분한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해소되지 못한 갈망이 있으나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엄마아빠도 처음이라서 그랬어-
첫 아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혹시나 잘못될까 봐,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해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높은 기대를 받는다. 그리고 뒤늦게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깨달아 이후의 자식에게는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대한다지.
우리 집의 장녀 역시 전형적으로 자라왔으나 그 결과물은 그렇지 못하다. 무뚝뚝하고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막내인 나와 달리, 장녀이자 나의 손위형제는 우리 집의 모든 구성원에게 관심이 많다. 구애인마냥 "뭐 해?"라며 방문을 느닷없이 열어젖히고, 그에 짜증을 내면 오히려 깔깔거리며 직접 등을 떠밀기 직전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툭툭 건들거나 몸을 만지작 거리기도 일쑤다. 무관심으로 응수하면 관심을 줄 때까지 기웃거린다.
문제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말처럼, 원치 않는 관심을 퍼다 줄 때는 언제고 본인의 기분이 나쁘면 사람 성질을 긁는다. 이 성질을 긁는 정도가 보통에서 멈추지 않고, 상대방이 이성을 잃을 때까지 계속된다. 대체로 그 상대는 우리 집의 '남자'들이다.
'언니'는 본래 횟수로만 따졌을 때에는 나랑 가장 많이 싸운 자이기도 하다. 선천적인 기질도 예민한 편이며,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나와 방을 같이 썼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많았다. 언니는 절구공이를, 나는 쌍절곤을 서로에게 휘두를 정도였으니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나보다 앞선 가정폭력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모순적이게도 가장 많은 기대와 압박을 받아왔지만, 부모님의 기준에서 투자 대비 성과를 가장 내지 못했다. 다그침 후 반발, 체벌의 반복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체벌의 탈을 쓴 화풀이와 폭력의 강도가 제일 심했던 때에 언니는 이미 성년이었다. 미성년자인 내게도 치욕적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내게는 아직 부모의 양육 및 지도 책임 하에 있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의 폭력의 기한이 제일 길었던 언니가 느꼈을 자존심의 상처는 어떠했을까.
그즈음 언니는 나와 종종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폭력을 당한 적도, 목격한 적도 없는 다른 형제와 달리 우리 둘만이 유일한 이해자이며 당사자였다. 예전에는 짜증 나고 상종하고 싶지 않았던 상대지만, 어느 순간 안쓰럽고 애틋해졌다.
그리고 나는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과학대학인 만큼 폭력과 인권에 대해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많아졌다. 학내 언론 활동을 하면서 좋은 어른들도 많이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피해 사실을 공유하면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 가족들 없이도 다른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가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반면 언니는 그렇지 못했다. 해소하지 못한 분노를 푸는 언니의 방법은 폭력의 당사자와 교류하는 것이었다.
경제력이 없어져 자존심이 잔뜩 상한 아버지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화풀이로 폭력을 휘둘렀다. 나중에 경제력을 되찾았을 때 그는 부끄러운 과거는 모른 척 이상적인 가족을 꾸며내고 싶어 했다. 철저히 무시한 나와 달리 언니는 그 바람에 응해주었다. 여느 장녀처럼 가끔 장난도 치고 선물도 사다주며 효도를 했다. 그렇게 그가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때, 언니는 그가 폭력을 휘두르던 당시를 틈틈이 언급하면서 면박을 주고 창피를 주었다. 모른 척 얼렁뚱땅 넘어가던 그를 지속적으로 자극했다.
초반엔 대충 사과하던 그도 점차 다시 화를 냈다. 이전처럼 폭력을 동반하진 않더라도, 이미 사과를 한 다 지나간 과거의 일을 들쑤시는 언니가 한심하다며 폭언을 쏟아냈다. 그러면 언니는 몇 번이고 억울함과 분노에 악을 썼다. 말리는 다른 형제에게도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너도 똑같다며 화살을 돌렸다. 어느새 언니는 혼자 예민함에 집안을 시끄럽게 하는 논외의 '무언가'가 되었다. 평소에는 가족을 누구보다 잘 챙기지만, 과거에 얽매일 때는 또 시작이라며- 이해받지 못한다.
나만이 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언니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치료를 권해보기도 했고, 더 이상 남은 이들에게 잘해주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하하호호 웃으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며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같이 연대해서 완전한 독립을 꿈꿔도 모자랄 판에, 나만이 유일한 이해자임을 모르고 배알도 없이 무슨 짓인가. 이해받지 못할 것을 얼마나 더 깨달아야 바보같이 구는 걸 멈출까.
아- 가련한 언니.
나는 언니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 나는 이제 괜찮다며, 내쪽에서 먼저 저들을 끊어낸 것이라 자위했지만 언니를 통해 내게도 해소되지 않은 갈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아픔이 정신병자의 발작처럼 비춰지는 것도, 앞으로도 그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을 절절히 느낀다. 전형적인 애정결핍의 그 모습이, 바보 같은 그 모습이 내게 옮아올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