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교수님들조차 학생들에게 조심스럽게 묻지만, 대학원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차 없이 던지는 가장 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너 대학원 나와서 교수할 거야?
논문은 잘 되어가?
그래도 방학에는 쉬는 거 아냐?
물론 아무런 의도 없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들을 듣는 입장에서는 조건반사처럼 숨이 턱 막힌다. 나 역시 처음에는 전공에 대한 막연한 호감으로 대학원에 입학해서 해당 질문이 갖는 무게를 몰랐다. 그러나 점차 대학원에 녹아들수록 논문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교수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니 위 질문들이 엄청난 부담감을 주는 것이다.
들었던 출처는 까먹었지만 가장 잘 와닿았던 비유를 해주겠다.
교수가 되는 것은 '주차'와 같다.
내가 서울 촌놈이라 지방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구 밀도가 끔찍하게 높은 수도권에서는 어딜 가나 주차 전쟁이다.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은 구석 조그만 자리에도 차가 들어차 있다. 빈 공간을 찾아서 한 바퀴를 돌아보거나 다른 층을 탐색하려고 했더니, 방금 지나쳤던 자리에 있던 기존의 차가 갑자기 나갈 수도 있다. 이때는 뒤에 줄지어 있는 다른 차가 주차를 한다.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뒷사람이 차지하냐고 따지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교수 자리도 이와 같다. 시쳇말로 '지잡대'라 불리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의 교수들 스펙도 허접한 것은 아니며, 학령인구는 줄어들어서 갈수록 교수 자리에 대한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결국 기존에 있던 교수들의 은퇴나 이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그때 기존의 인원을 대체할 수 있도록 비슷한 세부 전공과 연구 이력을 내가 가지고 있을지는 순전히 '운빨'이고 '타이밍'이 반이다.
무엇보다 면접관이 되는, 붙는다면 미래의 동료가 될 같은 학과 내의 교수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짐을 대등하게 나눠가질 인간을 찾는다. 때문에 거의 한치의 예외도 없이 자신들과 실적이 비슷하거나 좋은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여기서 실적이라 함은 '논문 개수'와 '논문이 얼마나 이름 높은 저널에 실렸는지' 여부이다.
교수되기보다 난이도는 낮다고 하지만, 다른 연구기관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는 정식 연구원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학계에서 심사 기준 1순위는 무조건 '논문'이다. 또한, 연구기관의 종류로는 사기업 연구원, 공공기관 연구원(정부출연연구소), 지자체 연구원이 있는데, 최근의 문과에게 사기업 연구원 자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제목의 '연구자'는 잘릴 걱정 없이 정기적으로 돈을 버는 교수와 기관 연구원을 포함한 개념이다. 우리 교수님 왈,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연구'를 하지만 경제적 벌이가 불안정한 사람은 연구자가 아니라 '학자'라고 부른더랬다.
그러니까 박사 학위까지 따도 독립된 '연구자'로서 밥 벌어먹고 살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리고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대학원생들도 일찍이 논문 쓰는 과정을 익히고, 주기적으로 논문을 저널에 내는 것이 장려된다. 그 결과가 바로 전 화(話)에서 말했던, '기말 논문'이다.
대학원 수업에서는 시험이 없는 대신 기말에 보고서를 낸다. 이 보고서는 학기 내내 한 연구를 기록한 결과지이자 약식 논문인 셈이다. 저널에 논문을 낸다고 무조건 실리는 것이 아니니, 종강을 한 직후(방학 동안)에는 논문을 발전시키고 여러 번의 저널 심사를 거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 이게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이상적으로 스펙을 쌓기 위해 해야 하는 대학원생의 '루틴(routine)'이다.
아, 그러면 한 학기에 수업을 2~3개씩 들으니까 이상적인 대학원생은 1년에 논문을 네댓 개씩 내는 거겠네요? 아니다. 모든 수업의 기말 논문 상태가 좋을 수 없다. 1년에 논문 1~2개 내는 정도가 무척이나 모범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인 문과 대학원생의 모습이다. 아주 평범한 대학원생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