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적금 깨서 샤넬백 살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 말은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큰 부부싸움 후에 내가 신랑에게 했던 말이다.
이때 적금을 깨긴 했지만 가방은 사지 않았다.
나는 사실 명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이 없다. 많은 돈을 명품으로 교환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그에 따른 가치가 있겠지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 나도 하나 사겠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꼬맹이였던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아직 명품가방이 없다.
왜 사지 않았지?
가방을 사지 않은 이유를 한번 생각해 봤다.
첫째. 나는 비 오는 날 명품백을 품에 안을 자신이 없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지인들이 얘기한다. 우산도 차도 없이 나간 어느 날 갑자기 비를 만나면 '샤넬님'은 품속에 고이 품고 뛰어야 한다고. 나는 어떤 물건도 그렇게 아껴본 적이 없기에 수백의 그 아이 역시 그렇게 아껴줄 자신이 없다.(샤테크를 부르며 꾸준히 가격을 올린 탓에 현재는 천만 원 넘는 것도 많다고 알고 있다.) 비가 오면 나의 머리숱이 더 중요하다며 천만 원짜리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할 것 같으니 어쩌냔 말이다. 사용 후 고이 닦아 가방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더스트백에 다시 넣어서 보관해야 한다는데, 이 역시 나와 맞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내가 가진 물질은 유한하기에,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다.
가족 여행을 한번 더 가고 싶었고, 배우는 비용으로 쓰고 싶다. 엄마인 나도 각종 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다 보면 나의 배움은 자꾸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줄줄이 나열해 보자면 보컬수업, 피아노, (어릴 때 5년은 넘게 다녔건만 실력이 형편없다), 바이올린, 수채화, 1대 1 필라테스수업, 뜨개질, 캘러그라피, 패러글라이딩 등등 A4 용지 10포인트로 한 장 가득 쓸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바라는 자아의 모습이 아니다.
글쎄, 자아라는 표현은 너무 거창한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돈을 써서 나를 표현하고 타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기 위함이 명품이 주는 효과라면, 나는 다른 것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 외모적으로는 고운 피부와 푸석하지 않고 좋은 머릿결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얼굴은 환하여 잔잔한 미소가 늘 함께 하는 그런 사람. 찡그리는 주름은 옅고,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은 자연스럽게 잡힌 얼굴. 그런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피부과의 레이저 시술, 성형외과의 보톡스 시술, 미용실의 영양처리정도가 필요할지도). 거기에 단단한 내면에서 나오는 여유 있는 태도는 필수 조건.
혹시, 내가 지금 샤넬의 고객들을 저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 그런 의도는 진짜 아니다.
아직 명품을 당연하게 소비할 상황이 아니며, 그 가치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남들이 다 하니까 라는 이유로 명품을 소비할 뻔 한 나의 이야기이다.
소위 말해 "가랑이 찢어지게" 명품을 소비하는 행태가 전염병처럼 번지게 되는 상황 속에 있었다.
비슷한 연령과 재정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을 키우며 서로를 비교함으로 인해 나오는 소비. 이것을 가짐으로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그런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구매를 나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만약 내가 100만 부 1000만 부 작가가 된다면?(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서 살이 빠질지도) 명품가방을 사겠다. 이런 경우 책의 인세 외에도 강의 요청도 들어올 것이고 앞으로의 수입 또한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 더불어, 장소와 상황에 맞는 직업적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또 1등이 당첨되는 정도의 단발성 행운을 가지고는 샤넬은 우리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맞을 것이다.
물건을 소유하면서 가지는 즐거움이 경험을 소비하면서 갖는 즐거움보다 큰 경우.
그저 내가 후자인 경우일 뿐.
조금 더 내 얘기를 해보자면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고만 고만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
명품백이 단 하나도 없는 나 같은 부류가 더 귀한 동네.
새로운 '아이'를 메고 온 지인을 단번에 알아보고 아는 척하며, 부러움과 찬사를 보낸다.
나의 관심사 밖인 이유로,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그래도 '메이커 브랜드'에 대해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오 새로 산 거야? 이쁘다. " 라며 사교적 멘트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거다.
종종
"작년부터 들고 다녔는데 와 이카노?" 핀잔이 날아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창 유행하던 브랜드를 몰라서 주변인들을 웃게 한 에피소드도 있다.
10년 전쯤이었던가,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줌마 두 명이서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어머 이 신발 어떻게 구하셨어요? 물건이 아예 없던데"
"아 저도 물건이 없어서 구매대행으로 겨우 샀어요. 지금은 또 구하기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흰색신발에 별이 그려져 있다. 상황이 안타깝던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기 그거 롯데백화점 가니까 많던데요? 스프리스 매장 있잖아요. 롯백에"
-그 신발은 골든구스였다(일반 운동화의 4배 정도 가격의 구제 스타일의 신발)
때 묻은 신발 콘셉트 탓에 , 딸이 해지고 더러운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운 어머니가 사랑으로 그 신발을 뽀얗게 만드셨다는 일화도 있는데, 내가 그 어머니랑 영판이다
한 도서관에서 열린 존리(전메리츠자산운용대표이사) 대표님의 강의 중에 샤넬 오픈런 사진을 띄워두고
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본인은 가난해지려고 발악하는가 라는 말씀을 하셨다.
곳간에 곡식이 차고 넘쳐서 흘러내리는 쌀로 명품가방을 사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그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고 반틈씩 숭덩숭덩 퍼서라도 사게 되는 것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경험소비를 더 선호하는 단지 나의 "선호"일 뿐
내가 왈가 왈부 할 사안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하고 싶다.
샤넬백은 영롱하지만 당신은 그 자체로 더 영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