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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Oct 28. 2024

비 오는 날 아르바이트하다 생긴 일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만난 손님

친한 동생이  이사 가며  알바라고 넘겨주고 간  아이스크림 무인 매장 정리 알바를 하러 간 날이었다.


이날

그러니까 바로  이 날

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뉴스를 떠올리는 일을 겪게 된다





아파단지  안쪽으로  하나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는 작은 매장이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오전부터 어둠이 잔뜩 내려앉아 마치 새벽녘처럼 어두웠다.

오전 운동을 마치고 가게에 들렀다.

어린이 손님도 없는 시간인 데다 날씨 탓인지 가게 앞 거리도 한산하다 못해 고요했다. 닫힌문에 빗소리도 닫히고 귀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적막 속에  들려 어쩐지 스산한 기운이 드는 그런 날.


진열대에 가지런한 과자들 중 구멍 난 곳을

메우던 중이었다.

"딸랑"

출입문이 열린다


조용하던 가게 내부로 빗소리와 함께 물기 어린 서늘한 바람이 훅 끼친다. 자연스럽게 바람의 시작점으로 고개가 휙 돌아갔다.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제법 체격 있는 남자 한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5초쯤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남자가 말한다.


"어, 물건 새로 들어오는 거예요?"


어쩐지 말투가  불안하게 어눌한  남자는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데 잠깐만 옷이 잠, 잠옷이다.

지금은 새벽녘처럼 어둡다고 했지 밤이 아니라 오전인데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잠옷을 입고 왔단 말이다.

 한껏 뻗은 팔로 인해 레깅스를 드러내며 딸려 라간 상의를 리고자 팔을 급히 내렸다.

잠옷남에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   물건 정리하고 있는 거예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나뿐인 유일한 출입문을 막고서.

 다른 산길에서 곰이라도 만난  손끝이 떨린다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찾았다

아차.

가방째 계산대 옆에 두었다.

남자가 서있는 출입문 바로 옆에 있는 계산대에.


여러 대의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둘러싸인 이 공간에는 중간을 가로지르는  큰 가판대가 있다.

그리하여  통로가 넓지 않다

아니 좁다.

매우.

 사람이 하나의 통로로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물건 고를 수 있게 비켜주까요?"

일단 자리를 피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알맹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상대가 물건을 고르려고  매장 안쪽으로 진입하면 나는 반대쪽으로 자연스럽게 매장을 빠져나가면 된다

어차피 점원은 필요 없는 무인 매장이 아닌가

대답이 없다. 움직임도 없다.

혹시라도 갑자기 나를 향해 돌진한다면.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했다.


가게의 맨 끝 구석으로 갔다. 그래봤자 3-4미터 남짓이지만 거리를 벌였다. 중앙 가판대  뒤로 숨으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도 보이지  않는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네가 갖고픈 물건을 찾아  매장 안쪽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나는 그 반대쪽으로 도망, 아니 나갈 테니.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팔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상대의 동선 파악을 위해 오른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반대쪽 가판대 끝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왼쪽도 시도해 보았다. , 눈이 마주친다


이  상황은 영감 왜 불러  내지는 까꿍놀이가 아닌가. 뭐 하자는 건지. 여전히 출입문은 잠옷남에 의해 굳게 막혀 있다. 여자의 육감이 내게 말한다.


위험하다.


온갖 험한 뉴스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뒷 머리끝이 쭈뼛 서고, 동공이 확장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이틀차였고 주변 파악도 되지 않았다. 주위 상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당연히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

독 안의 든 쥐  영판이다.


"이 기계 동전도 들어가요?"

궁금해서 묻는 게 맞는지 의심되는  질문을

내게 흘리며 묻는다.

-들어가요

 말이  날카롭고 짧게 나간다


나는 유단자이다. 태권도 2단. 참고로 유단자는 사람을 먼저 공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의 종아리는 씨름선수 이만기처럼 튼튼하  팔뚝은 애들이 마동석이라고 추켜세워준다(잉? 칭찬이 아닐 수 있지만 나는 건강한 내 팔다리가 자랑스러움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잠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온 힘을 다해 나를 제압하려 한다면 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치 상황을 끝내야 했다.

"물건 살 거 없으면 다음에 다시 올래요?"

 어서 나의 제안, 아니 명령을 받아들여.

만약 거절한다면  유단자의 조항을 깨고 튼튼한 팔과 다리로  태권무술을 펼쳐 주리라.

쭈뼛거리며 미련이 남은 듯이 두어 번 돌아보더니


"다음에 다시 오께여"


하고 잠옷을  비에 적시며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대낮에 하는 무인매장 정리 아르바이트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던가






우선 가방을 확보 한 뒤, 남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문이 열려 있던 바로 옆 보습학원으로 뛰어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아까 잠옷 차림 남자 보셨어요?

래퍼처럼 말을 쏟아냈다.


원장님의  이랬다. 안 그래도 왜 저렇게 비 맞고 혼자 돌아다니나 싶었다며, 평소에는 보통 보호자와 함께 다닌다고. 해코지하고 그런 애는 아니라고.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의 오해가 미안해졌다. 이런 오해를 받게 하기 싫어서 다 큰 어른임에도 보호자가 함께 다니셨겠구나.


인적 없는 밤길에 줄곧 같은 방향으로 뒤따르는 남자에게, 그것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는 여자들의 일화는 익히 들 많이 들었을 것이다.

먹구름이 나를 집어삼킬 듯 내려앉은 채 내리는 장대비가 가져온 어둠에  이미 겁먹어 있었다. 이런 날이 아니었다면 무서움에 휩싸이지 않았을 텐데. 다음에 혹시라도  매장에서 마주치게 되면 친절히 대해주리라 다짐했다

이런 에피소드로 인해 쿠팡 알바에 이어 이 일도 이틀 만에 그만둬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하게도  아르바이트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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