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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Dec 03. 2024

꿀 먹은 교복

겨울에 즐겨 먹던 그 시절 호떡이야기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공부를 핑계 삼아 식욕이 왕성하던 여고생이던 때, 나는 밥보다 간식을 더 좋아했다. 하교 후 버스를 타는 곳까지 15분은 족히 걸어야 했기에 간식 연료가 필요했으니 

그것은 바로 호떡.


호떡을  만드시던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판 위를 지휘하시그 손은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물그릇에 살짝 담가 젖은 손으로

피자치즈처럼 늘어지는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신다. 흑설탕이 대부분인 호떡소를 한 큰 술 넣고 밀가루 감옥에 단단히 가둔다. 기름을 휘 두른 팬에 동그란 호떡을 올린다. 지글지글 기름에 한쪽면을 살짝 익혀 단단하게 만든다. 노랗게 익었을 아랫면을 뒤지개로 홀랑 뒤집은 뒤 꾹 눌러준다.

가끔은 감옥을 탈출하는 '소'들이 있지만, 괜찮다

탈출해 봐야 어차피 갈 곳은 나의 입속이다.


요즘은 호떡소가 흐르지 않게 종이컵에 하나씩 담아준다. 그 시절에는 반 접힌 두꺼운 종이사이에 호떡을 넣어 건네주셨다. 호호 불어가며 쫄깃하게 늘어나는 호떡을 한입 베어문다. 어김없이 고동색설탕이 흐르고, 그것은 내 교복으로 뚝뚝 떨어졌다. 


 두꺼운 모직으로 된 겨울 교복에 떨어진 설탕은, 그렇게 나와 함께 한 계절을 보내게 된다.


사실 나는 매년 겨울 호떡 소를 교복에 묻히고 다녔다. 물티슈를  잘 쓰지 않던 시절이라  휴지로 닦아보기도 했다.

 이런, 휴지까지 같이 붙어 한 계절 나는 수가  있다.


 두벌의 교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세탁소에 맡겨둔 며칠은 교복을 못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겠지? 나의 교복은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될 따뜻한 봄바람을 만난 후에야 세탁소에 맡겨졌다. 거기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도 한몫했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조물조물 손빨래라도 해서 입을 만도 한데,  호떡소가 마치 교복에 달린 겨울의 훈장인양  그렇게 한 계절을 지냈다.

나는 무던한 편이다. 내가 무던했기에 그런 교복을 입고 다닌 건지, 엄마가 바로 세탁소에 맡겨주지 않아서  무던해진 건지, 그 상관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무던함 덕분에  지금도 꽤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호떡이 생각나는 코끝 시린 날씨다.

 간식연료를 자제해야 할 40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생각난 김에 달콤한 호떡을 하나 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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