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의 돌고래처럼,위키드의 엘파바처럼

수족관 속 돌고래가 아닌, 바다의 돌고래로 살기로 결심하다

by 병 밖을 나온 루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제주 바다에 남방 돌고래가 산답니다.

저는 제주살이를 준비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꼭 보고 오리라 마음먹었어요.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제주 바다의 돌고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릴 적 꿈이 사육사였을 만큼,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동물을 본 적은 많지만, 제주 해안가에서 우연히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자연 속의 돌고래를 만나러 나섰다.

우선 '미쁜 제과'를 목적지로 찍고 출발했다.

한옥의 고즈넉함과, 큰 정원을 가진 카페가 마음에 들어 잠시 머물며,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었다.

한옥 까페 미쁜 제과

여기서부터 다시 cu 영락해안도로점을 목적지로 찍고,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로 이동하면서 돌고래를 찾아보면 된다.

(요즘은 '더 그라인드'라는 카페에 앉아서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차창밖을 바라보며 가다 보니, 돌고래가 자주 나오는 스팟이라 했던 영락방파제가 보였다. 이곳에서 돌고래를 기다려 보기로 하고,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검정 버섯더미처럼 피어 있는 현무암, 그 앞에 놓인 푸르른 바다, 파도가 만드는 뽀얀 크림 같은 포말이 그림 같은 바다였다. 우리가 현무암 사이를 폴짝폴짝 뛰며 바다 가까이 가는 동안 게, 따개비, 고둥등이 사람을 피해 바위틈으로 숨어들었다.

혹, 고래를 보지 못하더라도 위로가 될 만큼 신비롭고 재미있는 바다에 감탄했다.


어, 지느러미가 하나 둘 보인다.

설마 상어는 아니겠지?


돌고래가 분명했다.

설렘과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뛰었다.

빛나는 윤슬 위로 둥글게 굽은 매끈한 등을 드러내며 반짝이는 물체, 진짜 돌고래다.

마리쯤인가했더니, 금방 열 마리쯤으로 불어났다.


물을 탁 치며 살짝 뛰어올랐다 떨어지기도 하며

바다를 유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돌고래를 불렀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가 우리를 위험하지 않다고 여겨, 조금 더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아이까지 함께일 것 같은 돌고래 무리는 사이좋게 헤엄치며 조금 더 가까이 오기도 했다가, 다시 멀어지기도 했다.

한참을 인사하듯이 놀던 돌고래는 지느러미를 작게 만들며 점점 멀어져 갔다.

제주살이 때 만났던 돌고래가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 겨울에 만났던 돌고래 사진도 같이 첨부합니다.(동영상 캡처라 화질이 안좋습니다)

자연 속의 돌고래를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 괌 여행 때, 돌고래 투어를 통해 바다와 함께인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

제주의 돌고래를 본 순간, 괌의 돌고래를 본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제주의 돌고래는 왠지 한국말을 할 것 같다는 친근함 때문일까? 생뚱맞은 생각을 하며 돌고래를 만난 감동의 여운을 만끽했다.


괌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돌고래를 보는 것도 그때 당시에는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해안가에 서서 돌고래를 보는 것은 마치 돌고래의 선택을 받은 느낌이었다. 제주살이 후, 다시 제주를 방문했던 겨울에도 돌고래를 보러 갔다. 그때도 제주의 남방 큰 돌고래는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마웠다. 마치 제주에 두고 온 친구처럼 제주에 들를 때마다 보러 갈 것 같다.




보통 우리가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은 수족관이다.

지금은 돌고래를 훈련시키며 수족관에 가둬놓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일부 돌고래들은 수족관에 갇혀 지낸다. 자연 속의 돌고래는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사냥하고, 다양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한다. 그런 돌고래를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었으니,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리라. 멀쩡한 돌고래를 잡아서 가둬두기보다는 자연에서 살기 어려운 돌고래를 구조해, 제 생명을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의미에서의 수족관 생활이라면 어느 정도 윤리적인 책임에서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에서는 남방 큰 돌고래를 '곰새기', '수애기'라고 부릅니다. 우연히 그물에 걸렸다가 사람들에 의해 사고 팔리며 수족관으로 가게 된 곰새기는 제돌이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수족관에서 죽기도 했고, 일부는 다른 수족관으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태산이는 다행스럽게도 2013년에서 2015년에 걸쳐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듸, 곰새기' 책 중에서 /글 장수진


아쿠아리움이 아닌 제주 바다에서 남방 큰 돌고래를 보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적는 지금, 최근에 본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가 떠오른다.

영화 속, 녹색 피부를 가진 주인공 엘파바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다. 엘파바가 망토를 펄럭이며,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돌고래들이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과 엘파바가 'Defying Gravity'를 외치는 장면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바다의 남방 돌고래와 뮤지컬 영화 위키드, 둘의 연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수족관 속 돌고래처럼 사람에게 훈련받은 대로 사람에게 다가왔다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향할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의지로 사람에게 가까워지기도, 또 멀어지기도 하는 제주 바다의 돌고래들.

자연이나 사람이나 자유 속에서 비로소 자신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나는 영화 위키드의 마지막 사운드 트랙을 절규하듯이 부르는 주인공의 목소리에 심장이 뛰었고, 감동에 사로 잡혀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다.


엘파바의 감정에 동화된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 가정의 엄마로 가정 안에서 수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 배우자를 지지하는 아내, 노부모를 위하는 자녀, 이 모든 역할들이 나에게 소중하고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때때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나의 꿈, 욕망, 나를 위한 시간은 후 순위로 밀려나곤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속 꿈틀거림으로 알게 되었다. 내 마음도 알파바의 절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세상이기도 하지만, 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의 닉네임, 병밖을 나온 루기에서 루기는 벼룩이다.

미국의 유명한 곤충학자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에 의해 행해진 벼룩상자 실험에서 착안해 닉네임을 정했다.


벼룩은 자신의 키의 100배까지 뛰어넘을 수 있다. 한 무리의 벼룩을 실험용 대형 용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유리로 덮어서 의도적으로 점프를 제한했다. 그러자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는 벼룩들은 유리 덮개에 부딪히며 '탁탁'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냈다. 며칠 뒤 소리가 잦아들고, 루이저는 유리 덮개를 열었다. 벼룩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모두 뛰는 높이가 유리 덮개 근처까지로 일정했다. 충분히 용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데도, 벼룩들은 병 크기만큼만 뛰고 있었다.

이 실험에서의 벼룩처럼 병 안에 갇힌 벼룩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로 닉네임을 정했다.


그럼에도 나는 수시로, 스스로 정한 세상에 나를 가두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계 없이 뛰어 보고자 마음먹은 그 마음조차 잊고, 이내 현실에 아등바등한다.


"Unlimited"

나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달음이 나를 울게 했다.


나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 나의 가능성 따위는 접어, 스스로를 투명한 뚜껑 속 병 안에 가두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말했다. 나 역시 내 꿈을 향해,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날아오를 수 있다고.


물론, 가정을 지키는 일은 현재의 나에게 최우선으로 소중하다. 나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지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도 해야 한다. 둘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곧,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엘파바가 자신을 옭아매던 규칙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로 날아올랐듯, 나도 나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어본다.


나는 믿는다. 지금처럼 매일 읽고 쓴다면 하늘을 날던 엘파바와 제주 바다를 유영하는 남방 큰 돌고래처럼, 나도 내 안의 자유를 향한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애들 방학이라 일단은 식탁의 책을 치우고 밥을 차린다. 식탁을 치우고 또 책을 펴야지.


바다, 갈매기, 돌고래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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