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옮겨 세화에서 머물 때였다. 가까운 세화바다에도 해수욕을 하러 갔었다.
제주 살이를 하는 초반에 해수욕을 매일 해서 그런지, "바다 갈까" 하는 나의 물음에 아이들은 내내 시큰둥했었다. 세화 바다를 오가며 산책은 했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기에 하루 날을 잡고 해수욕을 하기로 했다.
물때를 잘못 맞춰가서 그런지 현무암들이 많이 드러나 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제법 험했다.
고운 흰색 모래와 얕은 쪽빛 금능바다와 자꾸 비교가 된다.
물놀이 장소로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세화바다 역시, 제주의 바다답게 너무 예뻤다.
아름다운 세화바다의 낮과 노을(저것은 시장표 호떡인듯)
잠깐, 혹시 내가 금능바다 예찬론자라고 생각하는가?
맞다.
사실 우리는 제주살이 시작부터 금능바다에 홀딱 반해서, 물놀이를 매일 했다.
그러다 질린 거다.
우리 아이들도 나도 물놀이를 좋아하지만, 해수욕은 정말이지 품이 많이 드는 물놀이이다.
간조의 금능바다물에서 나와 비치가운을 두르고 비치의자에 누워 쉬다가, 출출해지면 풀사이드 바에서 배를 채운다.
수영장의 푸른 물과 포개어진 나의 다리를 한 장에 담은 인증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긴다.
그렇다. 이건 호텔 수영장에서 노는 방법이다.
해수욕은 어떤가.
제주의 뜨거운 여름 태양빛 덕분에 해수욕이 가능하지만, 혹시 연약한 피부의 아이들이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염려되어 선크림을 발라주고 모자를 눌러 씌운다. 눈에 물이 튀기라도 하면 소금물이라 따갑고, 튄 물을 마시기라도 하면 입이 짜다. 애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목마르다며 물을 찾기도 한다. 모래사장이 폭신하고 좋지만 해변에서 뭐라도 먹다 보면 모래도 같이 씹힌다. 아이들은 모래 묻은 발로 신발 신는 감촉이 싫어서 징징댄다. 바닷물은 딱풀이 되어 모래를 우리 몸에, 물건에 가득 붙인다.
해수욕 후에 씻는 것은 어떻고.
바닷물을 잔뜩 먹어 몸에 착 달라붙은 래시가드를 서로 잡아당겨주며 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모래가 후드득 떨어진다. 몸에도 모래가 잔뜩 붙어 있다. 물이 졸졸 나오는 숙소의 샤워기를 들고 두피에 붙은 모래도 떼어내고, 몸 구석구석에 있는 소금기를 없앤다. 매일의 해수욕은, 좁은 욕실에서 세 명이 매일 해야 하는 목욕을 의미했다.
씻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물을 잔뜩 먹어 무거워진 긴팔, 긴바지의 래시가드 세벌을 조물조물 빨아, 꼭 짜서 널어야 한다.
가지고 논 튜브에 바람을 넣고 빼는 것도 내 몫이다.
저녁이라도 외식하러 나가면 다행이지만, 지친 아이들이 집에서 먹고 싶다고 한다면 저녁까지 집밥, 아니 숙소밥 당첨이다.
저녁을 지어 밥을 먹고 치우고.
아니 엄마의 하루 일과는 언제 끝나는 거지?
글로 적는 지금도 숨이 차는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적다 보니 나 진짜 고생했네.
(후에 쓰겠지만, 결국 나는 제주살이 중에 한번 아팠다)
어느 날은 너무 고되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누가 들으면 일하러 온 줄)
술을 못 드시는 엄마를 닮아 알코올과 친하지 않은 몸인데, 너무 피곤해서 숙소 앞 편의점으로 잠시 나가 한 모금 마시고 온 기억이 난다. 금방 취기가 오른다. 혼자 챙겨야 할 아이가 둘이다. 한 모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버려지기에 사실 낭비이자 사치다. 그날은 사치가 필요했다.
그냥 사진만 보면 아주 감성샷
제주살이 후, 그렇게 좋아하던 제주에 한동안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떠오르면 혼자 풉~ 하며 웃는다. 그럴만했어. 끄덕끄덕.
금능바다의 노을
전보다 제주를 더 좋아하는 된 지금, 두 눈을 감고 그때 찰칵 찍어서 기억 속 서랍에 담아 온 사진을 떠올려 본다.
금세 나의 양볼은 눈밑으로 끌어올려지고, 덩달아 입술 끝도 그쪽으로 향한다.
미소 짓고 있다.
마치 마법 융탄자를 타고 누워,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들리던 웅성거림, 잔잔한 파도 소리까지 당장에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지금 제주에 방문한다면, 윤슬이 빛나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나를 상상한다.
제주에 사시는 글 친구분들과 반갑게 만나, 커피 향이 가득한 제주스러운 공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아 물론, 여름에 간다면 나는 또 마법융탄자에 내 몸을 맡긴 채, 해수욕을 즐길 것이다. 다시 병이 나더라도 말이다.
뭐, 아프면 아팠던 얘기 또 쓰면 된다. 그것 역시 나의 글감이 되어 줄 테니.
애월 까페거리(한담 해안산책로)
보정하지 않은, 세화바다의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