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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갯짓 Nov 18. 2024

어쩌다 달리기

겨울의 달리기


종일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은 또다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보돼 곳곳에 한파특보가 내려졌습니다.


기상캐스터의 멘트에 살짝 주춤한 건 사실이다.

추운 날 달리기는 몸이 유연하지 않아 부상을 입을 염려가 많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늘 집안일을 얼추 마친 9시 10시 늦은 저녁에 달리곤 해서 더 추울 게 뻔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춥다잖아?

까짓 거 마음먹은 거니 한번 해보는 거지 뭐. 그냥 단행해 보는 거다. 분명 땀이 날 거니까 티 하나에, 긴바지 착장, 겉옷은 귀찮을지도 모르니 생략-

대신 마스크를 하고 집을 나선다.


한 여름에 시작한 나의 달리기. 가을엔 서너 번밖에 안 달린 것 같은데 어느새 이 계절은 좋아하는 노래 딱 한번 들을 수 있는 짧은 시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솟구치며 춤을 추는 건 뭐람? 유난히 바람이 많은 날이었다. 눈동자가 시리게, 귓불이 시리게 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일기예보가 딱 맞군.


그래도 오늘만큼은 뛰어야겠어




100미터 달리기 20초, 나의 기록


에이 거짓말! 20초 뛰는 사람이 어딨어?

운동회 달리기 꼴찌였던 내 순서를 기다리며 호루라기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내 심장소리를 혹여 누가 듣지는 않을까 가슴을 꾹 눌렀다. 남녀공학 중학교라서 더 신경 쓰여 사춘기 볼 빨간 아이가 되었다. 그 녀석이 보면 어쩌지? 그맘때라면 누구나 마음에 한 명 정도는 넣어두고 있지 않은가.


앞서서 한 친구가 슬렁슬렁 걷듯이 뛴다.

시험인데 왜 저러는 거야? 분명 쟤보다는 낫겠지. 꼴찌 기록은 면하겠지. 20초는 너무했지. 다행이야. 난 저 정도는 아니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 달릴 거니까. 그렇게 시작된 나의 백 미터 달리기. 마음은 이미 올림픽 선수, 금메달을 눈앞에 둔 결승전이었다.


20초 

선명하게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나의 운동 신경은 늘 그 모양이었다. 윗몸일으키기 한 개도 못하는 몸뚱아리... (윗몸일으키기에 관한 이야기도 한 꼭지 충분히 가능하다)

그 뒤로 내 인생에 달리기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때 친구가 어슬렁어슬렁 달리는 모습은 이미 나의 달리는 모습으로 완벽히 겹쳐졌기에 누가 볼까 두려웠다.



                       어쩌다 달리기


마흔 중반에 어쩌다 시작된 달리기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늘 내가 걷곤 했던 동네 코스에 친구가 달리기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언니도 한번 뛰어 볼래요?
으응? 그럴까...

거절을 어려워하는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약속은 정해졌다. 말도 안 되게 시작된 나의 달리기. 처음부터 매력적이어서 단숨에 빠져든 건 아니었다. 마라톤 준비하는 친구여서 따라 뛴다는 게, 시작부터 처음 10분 뛰고 3분 걷기 2번 반복이었다. 달리기 시작한 지 이미 1분도 되지 않아 나는 죽을 것 같았다. 이걸 20분을 해야 한다고? 맙. 소. 사.


하지만 아들 셋 자연분만으로 낳은 나는 오기라는 것을 장착하게 되었다. 버티기라고나 할까?

그날도 그랬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나니 그냥 달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달리기는 나랑 안 맞나 봐 ‘라고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집에 와서 달리기를 생각하니 그렇게 개운 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뛸 수 있다는 것. 마음속에 남아있던 찌꺼기들이 비워진다는 것. 대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정말 마음속이 땅에 묻어놓은 동치미처럼 시원했다.


사무실에서 오갔던 날이 선 이야기들, 껄끄러운 사람들. 그리고 이미 내 얼굴인 듯  스스로도 착각할 것만 같은 나의 하회탈 가면. 어떤 날은 즐겁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며 긴장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도 하게 되는 직장인의 하루.


그 시간들을 하나하나 허물어내고 남은 자리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보았다.



여름의 달리기는 그리운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했고 그 시절의 나를 만나기도 했다.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도 구석 한켠에서 꺼내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아직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집에 가면 아이들 꼭 안아줘야지’라며 생각을 다잡기도 했다. 이런저런 계획들도 머릿속을  오갔다.


뿌옇게 부유했던 것들이 모두 가라앉아 말갛고 고운 색깔로 물들어갔다.


비워낼 이야기들과 채워낼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그중 가장 먼저 나온 마음은  글쓰기였다.

관심 없으면 어때? 아무도 안 읽으면 어때?

내 마음인걸.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도, 연연하지도 말자.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익숙한 거리에 기분 좋은 초겨울밤이 내게 건네준 튼튼한 마음이다.



초겨울의 달리기, 바깥은 차가운 바람인데 나는 적잖이 데워진 온도에 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상쾌하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시간을 모른 척할 순 없지. 예전만큼 달리기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맘에 들었다.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라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달리기 허영심이 아주 잠깐 꿈틀대기도 했다.


그나저나 더 추워지면 어쩌지?

‘아직은 괜찮아'

준비 걷기를 충분히 하고 몸풀기도 게으르게 생각하지 말자. 다음엔 장갑과 모자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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