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보조바퀴가 달려있던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같은 반 친구들이 두 발 자전거를 뽐내며 우리 아이에게 던진 한 마디.
"야! 넌 아직도 4발 자전거 타냐?"
평소에 자존심이 세고 수치심이 강하게 느끼는 둘째 아이는 친구들의 그 한마디가 두 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지도 않게 만들어버렸다.
그 이후로 둘째 아이는 자전거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싫습니다.
바위인 게 싫습니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데다가
꼼짝도 못 하는 바위.
나는 왜 바위로 테아났을까요?
아이들이 어릴수록 그 발달의 속도가 다르고 아이가 가진 신체 능력도 차이가 많이 난다. 게다가 안전지향적인 부모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굳이 일찍부터 위험할 수도 있는 두 발 자전거를 꼭 마스터할 필요는 없다. 아이는 또래보다 1년 정도 성장속도가 느려 키번호 1번인 아이였기 때문에 안전하게 보조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더 오래 태우고 싶었다. 한글 떼고 학교 입학해야 하듯이 8살에 2발 자전거를 꼭 마스터해야 한다는 국룰은 없지 않은가.
이런 유치한 초등학생의 말에 개구리는 돌에 맞아 죽는 것처럼 내 아이는 크게 상처받았고 그렇게 새로 산 자전거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먼지만 쌓여갔다.
3학년이 곧 되어가는 시점에서는 이제 거의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분위기였고, 내 생각에 아이의 발달상 이제는 두 발 자전거를 가르쳐도 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전 새해 목표로 자전거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낸 것이었다.
"싫어!"라는 아이의 단호한 대답.
"또 놀림받기 싫어. 사람마다 다 다르고 1학년에 두 발 자전거를 다 타야 한다라는 법도 없는데, 그 애들이 날 너무 속상하게 했어"
나는 말을 아꼈다. 그저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한참을 생각하는 듯 말이 없던 둘째 아이가 이어 말을 꺼냈다.
"엄마, 엄마 그림책 중에 <다른 길로 가> 읽어봤는데 그 책에서는 주인공이 불안이랑 걱정, 근심들을 버리려다 결국은 다 가지고 가는데, 나도 그 책 주인공처럼 불안, 걱정이 있지만 다시 도전해 봐야 할까?"
"나 그림책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 그리고 자전거 한번 타볼래"
나는 특별히 아이에게 해준 것은 없었다. 그저 아이의 기분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었다.
아이의 마음은 말과는 다르게 두 발 자전거를 진짜 포기하기는 싫었었나 보다.
멀고 먼 은하의 별빛이 내 몸 위로 내려앉으며 말합니다.
"시간을 품은 바위야, 너의 시간은 별의 시간이란다.
한없이 길고 긴 별의 시간.
풀의 시간, 꽃의 시간, 개미의 시간보다도 훨씬 길지만
별의 시간도 결국 흘러간단다. "
그림책 <나는 돌입니다> 본문 중에서
그렇게 아이는 한번 타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아빠와 자전거를 타러 나간 아이는 상기된 목소리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 나 성공이야! 성공! 나 자전거 한 시간 만에 탔어.나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자전거 이야기만 나오면 의기소침해졌던 둘째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이들마다의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시간과 속도가 다르다.
'넌 왜 지금 못하니?'가 아니라 '지금은 내 아이의 시간이 아닐 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 시간, 그 순간은 곧 온다. 조급해하지 말고 그 시간을 즐기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씩, 한 단계씩 성장한다.
올해 둘째 아이는 그렇게 두 발 자전거의 벽을 넘었다. 그리고 올 한 해 자전거를 매우 즐기며 제법 잘 탄다고 생각하며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 자신을 칭찬한다며 스스로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