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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부터 Nov 21. 2024

나의 산타클로스

나도 선물 한 번 받아보자!

시작은 단순했다. 나도 선물 좀 받아보자는 물욕 가득한 외침.


결혼하고 살림을 하다 보니 '사는 사람'이 되었다. 마트에서 먹거리를 구입하고, 떨어진 생필품을 착착 채운다. 철마다 작아진 아이들의 옷을 장만했다. 내 옷이나 화장품은 그보다 가끔, 남편 것은 더 드물게 샀다. (다행히 남편은 그냥 서랍장 맨 위에 놓인 옷을 입고 출근하는 냥반입니다.) 애들 책,  준비물, 하다 못해 저녁에 먹는 야식까지 다 내 손을 거쳐 선택, 결제되었다.

뿐만이랴, 양가 부모님께 드릴 명절 선물, 생신 선물, 아이들을 위한 생일 선물, 어린이날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등등 이런저런 선물을 사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간다.


각종 쇼핑앱에 내 손가락 하나면 뚝딱 결제가 가능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 것은 당연. 나는 어느새 쇼핑의 달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착착 안겨 주는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그런데 어라 뭐가 허전하네. 내 선물은?




사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긴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물인데 선물이 아니라니? 이게 웬 닭 잡아먹고 오리발이세요 싶겠으나 사실이다.

나는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내가 갖고 싶다고 콕 집은 물건을 다른 사람 카드로 결제해서 가졌을 뿐. 특히 남편은 생일 한 달 전부터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성실히 물어봐 주고 생일날 착 대령해 주는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 알았다. 받고도 그다지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 특별히 기쁘지 않았던 원인.

선물은 주는 사람이 '선택과 결제'를 하고, 받는 사람은 '설렘과 기대'로 그 선물을 받는다. 내가 받은 선물에는 '설렘과 기대', 그것이 쏙 빠져 있었다. 주는 사람의 몫이어야 할 '선택'이 여전히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은, 나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꼭꼭 물어봤고 나는 '선택'했다. (나 그리 까다로운 사람 아닌데) 선물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고 있으니, 설렘과 기대가 없었다. 상대가 좋아할까 두근두근하며 애써 고르는 마음이 조금 아쉬웠다.


나도 선물 받고 싶다. 진짜 선물.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서 내 마음을 풍선처럼 붕붕 날아가게 해 줄 그것.




이렇게 시작된 친구들과의 마니또 선물. 매년 연말께가 되면 두둑한 회비 통장 덕에 손 떨릴만한 식당을 예약한다. '이번 모임에서 마니또 선물 주자' 총무님의 말과 함께  명 중 누구에게 내 선물이 갈까, 무얼 사지? 신나는 고민이 시작된다. 여기에 나는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기대와 설렘은 당연하고.


까똑까똑.


만남은 한참 남았는데 단톡방이 마니또 선물 얘기로 소란스럽다. 우리 넷은 취향, 체형, 얼굴, 발 사이즈 그리고 하는 일도 다 달라서 선물을 고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우리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살 것'. 가족을 위한 것, 가성비 대박, 실용적인 것은 잠시 사양합니다. 약간은 사치스러운 물건도 좋고, 내 돈이면 못 사겠다 싶은 핫한 유행템도 환영.


이 선물 누가 받게 될까? 얼마나 좋아할까? 궁금하지만 걱정이 되진 않는다. 우린 20년을 함께 해 온 친구니까. 그리고 이 마니또 선물은 하나같이 받는 사람 마음에 쏘옥 들었으니까. 어떤 선물이 더 좋은지 재지 않고 내 몫으로 온 선물에 그저 신이 나서 꺅꺅 거리는 모습들. 산타클로스가 되어 선물을 고르며 친구들 얼굴을 떠올린다. 여기까지 함께 한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 이어 갈 우정에 괜스레 코끝이 찡.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는 처음 마니또 선물로 받은 갈색 지갑, 하트 모양의 귀여운 목걸이는 한 번씩 하면 핫한 여자가 된 듯하여 마음이 뿌듯하다. 큰맘 먹고 샀다던 샤넬 헤어 미스트는 뿌릴 때마다 행복한 곳으로 데려간다지. 이번에는 나의 산타클로스에게 어떤 선물을 받을까 하는 기대가 설탕 실타래 엉기듯 차곡차곡 모아진다. 이내 선물을 기다리는 달콤한 설렘은 솜사탕처럼 커진다. 그래 이게 선물이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산타클로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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