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운 지 6개월이 되어간다. 물에 뜨기부터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막힘 없이 순탄하게 지나갔다.(잘하는 건 아니고 폼이 엉망진창이라도 그냥 할 줄은 안다는 뜻) 그런데 문제는 접영이다. 접영. 접영. 아 접영. 2개월째 나의 접영 진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처음에는 발차기가 문제였다. 접영 발차기는 다른 영법 발차기와 다르게 두 다리를 모으고 발을 차야 한다. '물을 눌러주세요'라는 말에 살림장만 퀴즈 버저 누르듯 두 발로 물을 야무지게 팍팍 눌렀다. 이 정도면 잘했지? 후훗. "회원님 그거 아니에요. 물을 지그시 눌러주세요. 뒤로 차지 말고 아래로 차셔야죠." "넵"
그다음에는 웨이브라는 것을 하란다. 웨이브라니. 세상 뻣뻣한 아줌마가 20대 시절에도 안 해 본 웨이브를 타려니 잘 될 리가 있나. 그나마 물속에서 하는 웨이브는 다른 사람은 안 봐서 다행이지. 안구 테러리스트 될 뻔. 발을 팍 차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이제 제법 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가슴으로 물을 눌러주세요. 허리랑 다리는 부드럽게 따라가시고요." "네에" 이번에는 물속에 들어가면 머리를 팍팍 들어 몸으로 꿀렁꿀렁 파도 모양을 만들란다. 이제 되긴 되나 싶지만 아직 동글동글 웨이브가 아니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삐죽삐죽 주식장 그래프 같은 직선 웨이브 신세. 수영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된다.
"자 이제 머리를 바깥으로 들고 한 팔로 접영 해 보세요." 드디어 팔 동작이 추가되었다. 이제 가는 거야!라는 생각도 잠시. 어라 내 몸이 왜 이러죠? 선생님 물속에서 손이 안 꺼내지는데요. 물이 이렇게까지 튀는 게 맞나요. 그리고 제 몸이 왜 이렇게 흔들리나요. 원래 몸이 뒤집어지는 건가요. 이건 접영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인디요. 아 진짜 접영 그거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데.
수영 선배인 남편한테(평영은 내가 더 잘함) 방구석에서 팔동작도 배워 보고, 침대 위에서 발도 차 보았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접영'을 검색해 거울치료도 했다. 자 이제 실전이야. 잘 못하니 하기 싫다는 약한 마음 따위 집어치워 버리고 열심히 해보는 거야. 비장한 각오로 수영복을 챙겼다. '나는 마르샹(프랑스의 수영선수, 파리올림픽 4관왕)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회원님 오리발 하고 20분 뺑뺑이 돌게요. 스노클 하고 자세 예쁘게 만들어 볼게요. 자유형 팔꺾기 하세요. 팔꿈치를 당겨 손을 눈앞으로 가져 오세요. 물속 턴 배워볼게요. 스타트하세요. 앞으로 무게 중심을 보내고 점프.
그런데 강사님, 제 접영은요? 저 진짜 진짜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거든요? 제가 접영 못하는 거 까먹으신 거 아니죠? 접영 하다 말아서 말아 먹으면 어떻게 하죠? 접영도 하지 못하는 제가 감히 이런 거 배워도 되나요? (물론 I형 모범 수강생은 이런 건 마음으로만 묻습니다) 눈을 가리는 미러 수경을 쓴 게 어찌나 다행인지. 새로운 것 하나 배울 때마다 동공지진이다. 이번 시간에도 나비가 되는 연습은 하지 못하고 강습이 끝났다. 대신 다리를 살짝 굽히고 물속으로 촥 뛰어 들어가는 스타트(실패), 왼팔 팔 꺾기를 배웠다.
접영 그까짓 것 좀 천천히 배우면 어때. 잘 못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뭐라도 배우니 재밌잖아.살다 보면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반사. 어깨에 힘 빼고 나의 계획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끌어 주는 대로 흘러가 본다. 내가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다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뭐. 잘 되지 않는 접영 때문에 수태기 올까 걱정되어 새로운 재미를 팍팍 주려는 강사님의 깊은 뜻이겠지. 어차피 할머니 될 때까지 수영할 거야. 50에는 접영하고 있겄지.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언젠가는 나비처럼 훨훨 물 위를 날아다니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때까지는 즐겨 보는거야. 이 모든 과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