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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부터 Dec 14. 2024

자유형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인생이라 답하겠어요.

자유형을 처음 배울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숨쉬기이다. 물에 뜬 채로 고개를 돌려 잠시 입으로 숨을 들이쉬고. 빠르게 얼굴을 물속에 담그고 코로 숨을 내쉰다. 한 순간 방심하면 코로 입으로 물이 사정없이 들어와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호흡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내 몸이 가볍게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냅다 몸을 던지면 어느 순간 음. 파. 음. 파. 물에 기대어 숨 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딱 네 번만 팔을 저어 앞으로 가 보기. 얼마 못 가도 괜찮다. 앞으로 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숨 쉬는 것을 실패해도 상관없다. 길어야 10초 남짓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팔과 다리, 그리고 코와 입이 함께 힘을 합하여 앞으로 나가 보는 경험이다.

이 과정을 견뎌내면 드디어 이쪽에서 저쪽까지 25M의 풀을 헤엄쳐 가게 된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멈춰 서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물이 콧구멍으로 함부로 쳐들어와도, 눈물인지 수영장 물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입안으로 꿀꺽꿀꺽 밀려 들어와도. '아몰랑 내 갈 길 갈래'라는 대찬 태도. 그거면 완주는 내 것이다.




가쁜 숨으로 팔을 저어 가다가, 자유형이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물속에 가라앉은 듯, 숨쉬기 어려운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 힘으로 스스로를 건져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희미한 빛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고 나서는 그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자. 딱 네 번만 팔을 저어 앞으로 가듯이. 원하는 방향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는 작은 시도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심봉사가 눈을 뜨듯 한 방에 깊은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의지를 담은 움직임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검은 물 위로 쏟아지는 빛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반복만이 살길이다!!!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힘 빼기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초보자일수록 수영을 할 때 온몸에 힘을 바짝 넣는다. 힘이 들어가면 유선형이 깨져서 힘은 힘대로 들고, 버둥대기만 할 뿐 앞으로 쭉쭉 나가지 못한다. 인생이라는 긴긴 바다를 끝까지 잘 헤엄쳐 가기 위해서도 힘 빼기의 기술이 필요하다.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바다는커녕 개울도 못 건넌다.

힘을 빼기 위해서는 '반복만이 살길이다'. 이 문구는 내가 다니는 수영장 벽면에 쓰여 있는 말이기도 하다. 반복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연습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자세로 물살을 저어가기 위해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고, 물과 한 몸이 되는 과정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파도처럼 반복되는 매일을 견뎌내야 한다.




지난 6월 시작된 나의 자유형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요즘은 몸통을 이리저리 돌리며 팔 모양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불필요한 동작 빼기 노력을 하고 있다. 아마 '이만하면 됐어.'라는 생각으로 중간에 그만했다면 몰랐겠지. 그래, 멈추지 말자. 나날이 능숙해지는 자유형처럼 기본은 단단히 지키면서 새로움을 추가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덜어내며 살자.

자유형은 헤엄치는 방법에 제한이 없는 경기 종목이다. 그래서 '헤엄칠 영'을 쓰는 배영, 평영, 접영과 달리 '모양(style) 형'을 쓴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물을 저어 가면 되는 영법인 셈이다. 어떤 모습이든 수용되는 자유형처럼,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모습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삶이라는 이름의 바다를 유연하고 씩씩하게 건너가고 싶다. 인생은 자유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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