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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충치라니

by 체리봉봉

건강검진을 일주일 앞두고 일 년 만에 치과에 가야 했다. 과잉 진료가 없는 우리 동네 양심 치과로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곳으로 늘그막에 사랑니 이슈로 마음고생을 할 때 진정 어린 진료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사랑니 보유자로서 누구보다 치아 관리를 잘해야 한다. 해마다 스케일링을 하며 사랑니 상태를 점검하고 발치를 해야 할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하여 양치질과 치실은 기본이요, 어금니 칫솔까지 구입해 어금니 끝까지 놓치지 않고 양치를 한다. 치아로 인한 고통을 피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자 오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침, 저녁, 최소한 하루 두 번은 3중으로 양치를 하며 나의 완벽한 자기 관리에 뿌듯해했다. 작년 치과 검진에서는 사랑니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치과의사의 평을 들었다. 양치를 할 때마다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의 이유 있는 자부심에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하기 싫은 숙제를 미루듯 치과 예약을 미루던 어느 날 밤 지독한 꿈을 꾸었다.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이름 모를 행인과 부딪혔다. 치아 네 개가 금이 가고 일부는 부러져서 몹시 당황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꿈이라 생각하며 화들짝 잠에서 깼다. 꿈이라 다행이었지만 악몽이어서 불쾌했다. 불안과 걱정으로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남편은 악몽이 아니라 개꿈이라 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남편의 말에 나는 또 위안을 얻었다.



악몽을 꾼 이후 주말이 지나 나는 충동적으로 치과에 갔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는 안 될 것 같아 예약도 없이 오픈 런을 했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일찍 치과에 가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스케일링을 받을 수 있다. 입 안에서 벌어지는 대청소의 소란을 귀로 들으며 그간 완벽하게 관리한 나의 치아에 대해 칭찬받을 생각을 하며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노련한 치위생사의 빠른 손기술로 예상보다 이르게 스케일링을 마쳤고 오랜만에 온 김에 엑스레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마지막으로 치과 의사의 면담만 마치면 된다. 나는 예년과 다를 바 없을 치아 상태를 생각하며 일말의 긴장도 없이 치과 의사를 기다렸다. 이윽고 모니터에는 방금 찍은 생생한 치아 사진이 떴고 치과의사는 금세 옆에 앉아 나의 치아 상태를 들려주었다.



사랑니는 약간의 충치가 있던 터라 놀라울 게 없었다. 작년과 다르지 않은 상태라니 제법 선방한 셈이었다. 한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앞니와 어금니 끝에 작년에는 없던 충치가 새로 생긴 것이다! 내 눈에는 그저 흑백 사진일 뿐인데, 그렇게 열심히 닦았는데 충치가 있다니. 내가 알던 그 양심 치과가 맞는 것인가 순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이 나이에 앞니라니. 유치가 성한 어린이도 아니고 이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이 나이에 충치라니. 나는 배신감과 좌절감에 주저앉고 싶었다. 현실 부정을 하며 치과를 나섰다. 나는 속으로 꺼이꺼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왜 충치가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완벽한 관리에 빈틈이라도 있던 걸까.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답을 찾았다. 아무래도 2중, 3중 양치를 하며 안일하게도 가장 기본적인 칫솔질을 소홀히 한 이유가 큰 것 같았다. 게다가 앞니 충치는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를 빨대로 물 때 위치와 정확히 일치했다.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으나 곰곰이 따져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마침 하교를 마친 셔니는 치아 교정 보조 장치도 빼놓고 맛나게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오늘 치과에서 있었던 일을 꺼이꺼이 들려주었다. 셔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귓등으로 들었다. 나는 그럼에도 양치질을 잘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했고 셔니는 마지못해 양치질을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셔니야, 아무래도 엄마가 양치를 소홀히 해서 충치가 생겼나 봐. 셔니는 정성껏 양치질을 해. 도자기 닦듯 이 하나하나 공들여서.”

셔니는 정성껏 닦는 게 어떻게 닦는 거냐며 입에 치약 거품을 물고 되물었다.

“그건 말이지. 정. 성. 정. 성 하면서 닦는 거야.”

나는 울다가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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