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물러나며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었다. 내가 태어난 때이기도 하지만 잠들었던 생명력이 움틀거리며 새롭게 솟아나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추위에 한껏 움츠려든 어깨도 자신 있게 펴고 다닐 수 있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마음까지 가볍게 한다. 가을의 찬 바람은 쌀쌀맞은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렸다. 한데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며 나의 확고했던 취향도 바뀌었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가을이 간발의 차이로 여름을 좀 더 끌어당겼을 때, 한낮의 뜨거운 햇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런 황금 같은 계절엔 나만의 프라이빗한 체육관으로 매일 걸음을 옮긴다. 24시간 공기청정기가 작동하며 스피커에서는 사계절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청정하고 쾌적한 환경에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가 않다. 걷기 운동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철길을 모방해 나무로 만든 침목도 있고 폭신한 코코넛 매트도 깔아 다양한 걷기 환경을 제공한다. 나무 데크 코스와 전형적인 흙길도 구현해 코스마다 걷는 재미도 있다. 자연에서 만나는 관목과 천장 끝까지 자란 교목도 여기에서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눈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초록 이파리를 보면 절로 힐링이 된다. 코끝에는 싱그러운 풀냄새, 흙냄새와 침목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마른나무 냄새도 감지된다. 눈과 귀와 코까지 만족시키는 데도 연회비는커녕 월 이용료도 없다. 모두 다 공짜다. 게다가 한 여름엔 생수도 무료로 준다. 걷기에 지치지 않도록 곳곳에 페이스 메이커도 있다. 티 나지 않게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걸으며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리듬을 맞춰준다. 속보와 완보를 반복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른다.
누구나 한 번 오면 평생회원이 될 것 같은 곳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은 우리 집 앞 공원이다. 집에서 공원 끝까지 6킬로는 족히 걸을 수 있어서 오며 가며 하루 만보는 거뜬히 채울 수 있다. 기분 좋은 한 시간을 보내면 덩달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나만의 작지만 소중한 루틴이다. 말할 때 약간 숨이 차는 정도로 씩씩하게 걷고 집으로 돌아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범벅이 된다. 정수와 냉수를 섞어 시원하게 물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하면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생각도 정리하고 길 위로 감정의 울결도 풀어버린다. 특히 마음이 복잡할 때 걷기만큼 좋은 해결책이 없다. 게다가 글쓰기 아이디어도 절로 떠오를 때가 많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절반은 길 위에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그 파랑새는 집 안에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공짜로 즐길 수 있는 럭셔리 피트니스 센터도 우리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