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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선물

by 체리봉봉

부엌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데 자꾸 꽃병에 담긴 꽃 한 다발이 눈에 들어온다. 카네이션, 장미, 리시안셔스, 해바라기와 그린 소재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같은 종류여도 색과 크기에 따라 다른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보리와 연노랑을 베이스로 환타색이 포인트가 되어 마치 상큼 발랄한 귀여운 소녀를 만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여러 해 전부터 스스로에게 꽃을 선물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나의 생일마다 원데이 플라워 레슨을 들으러 다녔다. 천성이 내향형 인간이다 보니 남에게 주목받는 일이나 무엇이든 드러내는 걸 기피하는 사람인데도 이날만큼은 조금 용기를 내어 꽃선생님에게 플라워 레슨의 목적을 밝힌다. 바로 나의 생일이라고. 그리하여 내가 나에게 주는 꽃선물을 직접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꽃처럼 친절한 동네 꽃선생님은 레슨비용보다 넘치게 비싸고 많은 양의 꽃을 선물처럼 준비해 주신다. 간혹 조각 케이크라도 따로 준비해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신 분도 있었다. 이렇게 찬란한 대접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이날만큼은 평범한 원데이 수강생이 아니라 기꺼이 주인공이 되어 어여쁜 꽃들을 마음껏 만진다.



가장 처음 만든 건 플라워 햇박스였다. 영국에서 모자를 보관하던 동그란 박스에 꽃을 입체감 있게 꽂아 꽃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것처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선물을 받는 사람에 따라, 원하는 컬러에 따라 디자인이 결정되는데 나의 경우 꽃얼굴이 크고 밝은 컬러를 선호하다 보니 늘 화사하고 화려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핸드타이드 스타일은 바인딩 포인트를 잡아서 줄기가 X자로 겹치지 않도록 잡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꽃다발 무게도 상당해서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되는 수업 동안 한 손으로 들고 작업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꽃바구니를 완성하고 귀가할 때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평소라면 쑥스러워서 피하고 싶은 관심이지만 이날만큼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본다.



생일마다 스스로에게 주는 꽃선물을 하다 보니 가까운 가족, 친구들에게도 꽃선물을 곧잘 하게 됐다. 생신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 직접 만든 꽃바구니나 카네이션 용돈 박스를 만들기도 하고 친구에게 꽃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 활짝 핀 꽃처럼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도 나의 기쁨이다. 또 한 번은 꽃바구니를 만들고 남은 꽃과 그린소재를 가지고 귀가하는 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 두 분께 꽃을 나눠드린 적도 있다. 내가 만든 꽃바구니가 참 예쁘다는 덕담을 들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갖고 있는 꽃도 나누고 싶게 한다. 꽃병에 물을 매일 갈아주고 수분 흡수가 잘 되도록 줄기 끝을 매일 조금씩 잘라주어도 꽃은 대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싱그러운 향을 내는 생기 있는 꽃을 보기 위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본디 식물을 기르는 걸 좋아하는 곽타타 엄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 돈이면 화분을 더 많이 사서 오래오래 키울 수 있다며 혀를 끌끌 찰 때도 있다. 아무래도 내가 엄마처럼 식물의 싹을 틔우고 잘 키워서 꽃까지 피워낼 수 있는 재주가 없다는 걸 모르시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얄밉게도 활짝 핀 꽃을 그저 하염없이 감상하고만 싶으니까.



글을 쓰는 내내 눈앞에 보이는 꽃 한 다발 덕분에 내 기분도 ‘맑음’이다. 이번 꽃다발은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남편이 받은 생일 꽃다발이다. 회사의 직원 복지 중 하나로 생일 선물을 직접 고를 수 있었고 건강보조식품과 케이크, 꽃다발 중에서 고민하던 남편이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나는 고민도 없이 상큼한 컬러의 꽃다발을 골랐다. 1박 2일 후 싱싱한 꽃다발을 받아 가지를 자르고 물병에 담아 감상하는 순간이 그 자체로 행복이다. 아무래도 이번 꽃다발의 주인은 남편이 아니라 나인 것 같다. 꽃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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