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봉봉 Nov 02. 2024

과메기 먹고 갈래?

지금 누리는 행복, 제철의 맛 

찬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면 가슴이 설렌다.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니지만 빼먹지 않고 찾아먹는 제철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해 바다에서 나고 자라 차가운 바다 바람에 온몸을 내어주고 한낱 미물에서 고단백 다이어트 식품으로 승화한 나의 사랑 과메기.



초록창에 과메기를 써넣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꽁치냐 청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의 숙련된 입맛은 청어의 비린 맛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결국 초심을 기억하려는 겸손한 입문자가 되어 미련 없이 꽁치를 선택한다. 



당일 주문, 당일 발송이라니 시계를 쳐다보며 바삐 손가락을 놀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의 위장은 과메기를 맞을 생각에 벌써부터 팡파르를 터트린다. 눈보다 빠른 손으로 잽싸게 카드 결제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아포리즘을 떠올리며 오늘이 지나 당장 내일이 오기를. 나의 기사님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나는 어느새 스토커가 되어 그의 뒤를 쫓고 있다. 포항에서 집화 처리, 터미널에서 간선 상하차를 반복하다 드디어 배송 출발이다. 야호!




해풍을 맞고 쫀득하게 반건조된 과메기를 가위로 듬성듬성 자르는 건 귤 까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새콤하고 칼칼한 초고추장에 과메기를 푹 찍어 달큼한 알배추에 올리고 쪽파도 올리고 마늘도 올리고 고추도 올리면 덩달아 나의 기분도 쑥 올라간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완벽한 저녁 밥상이다. 



아삭하고 쫄깃하고 매콤한 맛의 향연이 입안에서 펼쳐지는 동안 맞은편에 앉은 남편을 예의주시하며 재빨리 두 번째 쌈을 싼다. 이번엔 김과 다시마의 콜라보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 역시 끼리끼리 유유상종이 진리다. 풀잎에 내려앉은 아침 이슬만큼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은 과메기를 바짝 마른 김이 이불처럼 감싸고 물컹하고 미끈한 다시마로 한 겹 더 말아 쌈을 만들어 한 입 쏙 넣으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파라다이스가 된다. 세상 걱정도 슬픔도 잊게 만드는 과메기가 내리는 축복. 



오늘만큼은 대식가가 되어 보련다. 내가 이기나, 남편이 이기나 식탁에 끝까지 앉아 누가 더 많이 먹나 본격적인 베틀이다. 오동통한 몸통을 선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장어 꼬리는 매번 남편에게 양보하는데 과메기 꼬리도 양보해야지. 나는 현숙한 아내니까. 자기 합리화를 거듭하며 몸통만 골라 먹는데 갑자기 남편의 눈빛이 싸늘하다. 못 이기는 척 과메기 한 조각을 양보한다. 내가 늘 져준다는 걸 남편은 알고 있을까. 나의 사랑은 찐사랑이다. 



과메기를 먹는다. 고로 겨울이 다가온다. 

추운 계절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추가 주문의 기회가 많이 남았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