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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온다

새해의 다짐

by 새벽하늘

2024년 마지막날은 저녁 퇴근 후 그냥 맛있는 거 먹고 푹 쉬었다. 책을 집어 들었지만 잠이 솔솔 오는 걸 어떻게 막아보랴. 수면제가 따로 없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야겠다고 눈을 붙였는데 시계는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집안꼴을 보니 쥐 100마리가 와서 삐대놓은 것 같은 식탁에 쌓여있는 그릇에 그야말로 아수라장. 대충 정리하고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같은 의례적인 행사는 생략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덧 새벽 5시, 요동치는 알람소리에 침대에서 뒤척였지만 그냥 무시한 채 40분을 더 잤다. 생체리듬이 대충 5시에 맞춰진 건지 더 자려고 해도 거의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지니 참 신기한 긴 하다. 아무튼 어젯밤 못다 한 설거지와 마룻바닥을 좀 닦고 새해 아침부터 책 읽기에 돌입. 오후의 글쓰기를 완독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 고양이의 비밀의 1/3 읽기를 마쳤다. 어째.. 문장수집도해야 되는데 귀찮음을 이겨내야 되는데 말이지.


작년 1년 동안 고단하게 일한다고 고생했던 남편도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맹렬한 아침의 추위에 덜덜 떨 수는 없으니 내복까지 껴입고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서 우리 지역의 해돋이 명소 쪽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도로 위에 차들이 즐비했다. 현실적인 나는 일 년의 첫 번째 날에 해를 보러 가는 것보다 좋은 루틴을 형성하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던가 책을 읽는 게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건넸지만 평소 낭만이 흘러넘치는 남편은 그래도 해보러 나오기 위해서 휴일임에도 빨리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대단한 거 아니냐며 일출도 보고 조깅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실은 해보러 나올 마음이 눈곱만큼만 있었다. 하숙생 같은 남편이지만 이날만큼은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아이들에게 해돋이 보러 가자고 물었지만 당차게 가기 싫다고 말했다) 그냥 남편의 말에 따랐다. 도로 가쪽에 자리 잡은 많은 차들을 지나 꽤나 고도가 높은 곳으로 망설임 없이 향했지만 반대편산은 이미 떠오른 태양의 빛에 반사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기야, 잘못 찾아왔네." 그랬더니 남편 왈 "내가 아는 다른 곳이 있지." 라며 이미 해는 뜬 것 같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답사 차원으로 가 보자는 남편의 말에 끌려 아랫동네 쪽으로 내려갔다.


해돋이를 보고 나오는 차량과 인파에 뒤섞였다. 그래 뭐 태양의 새빨간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새해 첫날을 이렇게라도 함께 걷고 뛸 수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그리 크진 않았다. 데크를 따라 끝까지 들어갔는데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뷰를 찾을 수 있음에 오히려 마음이 벅차올랐다. 올해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때론 지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그럴 때는 내려놓고 쉬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지. 길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쉼표가 필요한 법이니까. 전남 무안 비행기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는데 각자의 사연 또한 다양했다. 대학입학을 앞둔 꿈 많은 학생부터 못다 핀 어린이들, 머나먼 땅에서 시집을 오기 위해 이 땅을 밟으려고 결심했던 태국인 새댁. 지금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삶은 당연한 게 아님을. 오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메멘토모리,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 앞에서,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찰나의 순간인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나란 사람은 어떤 자취를 남기고 떠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올 한 해는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몹시도 궁금한 새해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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