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일을 놓은 적이 없었던 엄마는최근까지도 농사일과 병원 식당일이라는 투잡을 소화하는 중이었지만 그중 병원을 퇴사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보낸 엄마의 시간이 20년이 넘는다는 걸 퇴사할 즈음에야 깨닫고 놀랐다. 병원일의 빈자리를 농사일로 가득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논으로 밭으로 몸을 혹사시키던 엄마는 우리 가족을 걱정인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모자란 걸까. 엄마는 굳이 새로운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굳이.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쯤인 마흔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엄마는 병원 새벽 출근을 위해 운전면허가 필요했다. 엄마가 면허증을 따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 우리는 잔뜩 날카로워진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게 주된 과업이었다. 겨울은 아니었는데, 우리 집은 북극이었다.
그러던 엄마가 이번 아르바이트를 위해 들고 나타난 미션은 카톡과 컴퓨터. 역대급 나이에 역대급 미션을 받아온 엄마의 열정은 온 집안을 활화산으로 바꾸어 놓았다. 겪고 보니, 활화산이 북극보다 아주 조금 더 낫다는 걸 위안 삼는 우리 식구들.
엄마가 지원한 일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어르신들이 일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담당 공무원에게 전송하고 업무 일지를 보내는 것이다.
어딜 가나 좀처럼 긴장을 하는 김여사가 아닌데,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갑자기 사진과 문자 전송 테스트를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하고 나온 것이 너무 창피하고 속상하셨나 보다.
호기롭게 딸한테 배워서 할 수 있다고 장담은 하고 나왔다는데, 함께 면접을 본 분들은 회사원 퇴직자 거나 문자 좀 쓰는 사람들인 것 같다며 엄마의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우울감은 말할 수 없이 깊었다.엄마를 위로하면서도 속으로 ‘ 돈도 안되는데 뭘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일을 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 나는 언제 다시 경단을 단절시킬 건지, 엄마의 용기가 부러웠다.
며칠 후 다행히 아르바이트 합격 소식과 함께 친정집의 활화산이 잠잠해졌고, 검은 먹구름이 걷힌 하늘처럼 엄마도 파랗게 밝아졌다.
같이 사는 동생의 초밀착 카톡 과외를 받으며 엄마는 사진을 보내고 메시지를 보내는 카톡 세상에 바로 적응하셨다. (사실 동생의 타박에 치사해서 못 배우겠다는 신고전화를 몇 번 받긴 했다.)앞뒤 없이 갑자기 날아오는 사진이 뭔지 한참 고민하고 있으면 '연습'이라는 메시지가 뒤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멀리 사는 큰 딸, 막내딸,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고하나뿐인 손녀에게도 안부를 묻는다.
강아지 사진, 마당에 놀러 온 주인 없는 고양이 사진과 함께 틀린 맞춤법에 오타까지, 약간의 문해력을 시험하는 문장들을 함께 보내셨다.
열두 살 손녀는 할머니의 오타가 너무 재미있다며 할머니와의 카톡 대화를 즐거워했다.다행히 사위를 닮은 손녀는 엄마의 딸보다 다정했고, 동물을 좋아하는 공통 감성 덕분에 서로의 반려동물 사진을 공유하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초등학생 손녀와 할머니의 카톡은 재밌고 따뜻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신선하고 뭉클했다.전화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가 몸에 베인 엄마와, 그동안의 짧은 통화로는 느낄 수 없었던_우리 엄마의 갬성.
할머니의 오타를 나보다도 금방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는 딸.
며칠 전 태어난 백구의 새끼가 10마리나 된다는 소식을 아이에게 전해 들었다.
엄마는 손녀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주신다.
아이는 동영상을 부탁하고, 이참에 동영상 찍는 것까지 터득해서 뿌듯한 우리 엄마.스마트폰을 쓴 지 10년이 넘었는데 확인만 할 뿐 직접 사진이나 영상, 메시지를 보내 본 적 없었던 엄마의 변화.
아르바이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운 카톡은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못 만나는 손녀와의 아기자기한 소통으로 이어졌고, 3대에 걸친 여자들의 단톡방도 생겼다. 조용한 편이지만 그래도 다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
물론 아직까지 엄마의 메시지는 짧고 종종 해석이 필요하다.그렇지만 서울 사는 막내딸이 주말에 어디 갔는지, 학교 다녀온 손녀가 오후에 간식으로 뭘 먹었는지 확인하며 자식들의 안부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