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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이 오길 간절히 기다렸다

전 글 쓰는 엄마입니다

by 희너지

지난주 목요일, 평소처럼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띠링 -


익숙한 알람 소리에 무심히 눈길이 갔다. 잠금화면을 풀고, 브런치 앱에서 온 알림을 눌렀다. 그 순간, 내 온 몸은 얼어붙었다.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번에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내가...? 정말...?’


정적이 30초쯤 흘렀을까. 갑자기 집이 떠나갈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악악악!!!!"


평소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조용히 좀 하라고 타일렀던 내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족들의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의아함과 당혹감, 그리고 조금씩 따가운 눈초리로 변해갔다. 내 눈이 가족들의 눈과 마주친 순간, 눈물샘이 고장나고 말았다.


“흐흐흑... 여보, 얘들아... 엄마 붙었어. 엄마가 뽑혔어!!”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아이들은 스스로 밥도 잘 먹고, 옷도 잘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손길이 필요 없어지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육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해방감이 드는 동시에 엄마로서의 나는,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무렵부터 문득, 이런 마음이 자랐다.


‘나로 살고 싶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로 서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감정을 정의하자면 어른의 사춘기라고 할까. 갱년기라 하기엔 이르고, 사춘기라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지금. 중2병 걸린 아이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졌다.


방법을 찾고 찾다 난 새벽기상을 택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부르지 않는 시간. 동도 트지 않은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그 고요가 참 좋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를 들여다보았다. 내 마음, 내 생각,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고, 하나하나 도전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나의 정체성을 되찾는 여정이었다.


무채색 같던 내 일상에 오색빛깔이 조금씩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죽어도 못하겠다던 수영을 시작해 두 해가 넘도록 꾸준히 다녔다. 10년 넘게 경력 단절이던 내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직장’이 생겼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작가’라는 꿈을 현실로 꺼내게 되었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갈수록 충만의 순간이 쌓여갔지만, 때로는 흔들렸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일까?’


아이들보다 나를 더 찾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욕망이 커질수록, ‘엄마’라는 이름은 나를 붙잡았다.

'지금 이럴 때야?'
'가족들 끼니부터 챙기고, 살림부터 하고 해야지.'라고.


하지만 나는 결국,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택했다. 정성껏 밥을 차리는 것보다, 브런치북 마감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고, 글을 쓴다는 핑계로 아이들 책 읽어주는 시간을 건너뛴 적도 있었다. 가족과의 소통, 아이들과의 감정 교류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나는 나도 소중했다. 어느새 내 우선순위는 남편도, 아이들도 아닌 '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 10주년 행사에 전시될 글을 공모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미 여러 번 공모전에서 탈락했던 터라, 솔직히 기대는 없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 잘 쓰는 사람들 천지인데, 내가 과연 100명 안에 들 수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어느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써 내려갔다.

브런치를 통해 내가 이룬 꿈,
그리고 앞으로 이뤄갈 꿈들에 대해.

그저, 마음이 말하는 대로.


글을 발행하고,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발표 당일, 오전에도, 오후에도 조용했다. ‘역시 안 됐구나..’ 마음을 접고 가족들과 식사하던 저녁 6시 무렵,
알림이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마치 말라 있던 우물에서 물줄기가 터지듯,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꾸만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VIP티켓에 적힌 이름이 내 이름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작가라는 꿈을 마음속에서 꺼내기 시작한 건 정확히 1년 전이다.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묵혀뒀던 그 꿈.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던 그 조각에,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처음엔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가족들이 “오늘 뭐 했어?” 친구들이 “너 뭐 하면서 지내?” 묻기라도 하면,


“나... 글 써.”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삼켜지기 일쑤였다.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은 나의 정체성을 찾아줬지만, 현실에선 나를 한없이 작게도 만들었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 ‘내가 작가라고 부릴 자격이 있을까?’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을 쓰는 매 순간 마주해야 했다. 부족하다 못해 늘지 않는 나의 글쓰기 능력을. 브런치라는 이 공간엔 읽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글들이 널려 있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은 펼 수 있을 것 같다.


유명한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내 책이 출간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에 내 글이 전시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나의 글이 닿아 진심이 통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금까지는, 그저 나의 고집과 끈기로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이라는 달콤한 연료를 얻었다.

더 힘차게, 더 멀리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글 쓰는 엄마라고.


지금 이 순간, 행복에 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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