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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라떼를 마실 용기

실패해도 괜찮아

by 희너지

늘 하던 일상이나 루틴에서 벗어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속삭이는 나 자신과 새로운 곳을 향해 한 발자국만 내디뎌보라는 나 자신이 충돌하는 이 순간.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난 답정너 인생을 살았다. 답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 믿었다. 물건을 살 땐 항상 인기순으로 검색해 상위에 올라와 있는 물건 중 골라 구매했고, 카페에 가면 당연히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마셨다. 내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상이 어울리는지,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지 등은 우선사항이 아니었다. 가장 보편적인 것. 가장 인기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구매하지 않은 색상의 물건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나에게 더 잘 어울릴 수도

더 맛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난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실패하기 싫어하는 사람인건 아닐까?

어떤 소비도, 어떤 결정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 몸을 사리는 건 아닐까?


며칠 전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노트북과 책을 챙겨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스벅 앱을 켰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을 텐데 마침 얼마 전 인플루언서의 스토리에서 추천한 메뉴가 떠올랐다.


"여러분, 스벅 가시면 말차라떼에 시럽 빼고 오트로 변경해서 드셔보세요! 너무 맛있어요."


달콤 쌉싸름하며 세상 맛있다던 스토리 한 장.


순간 고민에 빠졌다.


'그냥 먹던 대로 먹어.'

'아니야. 다들 맛있다는 메뉴, 한 번만 마셔봐. 맛없으면 다음에 안 마시면 되지.'


짧은 시간이지만 내적갈등이 심화되고 그들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


마음을 정하고 주문하려는데 내 엄지손가락이 멈춰 섰다. 늘 익숙한 버튼만 누르던 엄지손가락은 평소와 다른 선택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손이 아닌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주문했다.


엠제이님, 주문하신 말차라떼 나왔습니다.


인플루언서가 맛있다 했던 메뉴가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요새 핫하고 유행이라는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건 어쩌면 내게 가장 미안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한데, 나 스스로 생활 반경을 좁게 설정하고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말차라떼의 맛은 기대이상이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만족도가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하던 루틴에서 벗어났다는 쾌감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그럼 다음엔 어떤 다른 도전을 해볼까?

조금 더 크게 발걸음을 내디뎌볼까?


누군가에겐 이런 도전이 별 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큰 산처럼 보이는 일이였다. 한 걸음만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실패도 괜찮다고 한 걸음은 내디뎌준 내 자신에게 참으로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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