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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 마지막이 될 뻔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떠나기 어려운 이유

by 희너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엔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라웠지만 멀리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부모님을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캐리어를 끌고 달리듯이 다가갔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불평을 쏟아내는 아빠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여행 가자고 했을까?


결혼하고 양가 부모님의 환갑이 되면 다 같이 가족 여행을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갈 일이 잘 없기도 했고, 왠지 환갑엔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그래서 시부모님과 친정엄마의 환갑이 되던 해마다 제주도로 온 가족이 떠났다. 어른을 모시고 여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더랬다. 그래서 이번에도 추진했다. 친정아빠의 환갑을 맞이하여.


이번에도 제주도를 갈까 하다가,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지인들의 말에 가까운 일본이 떠올랐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국내보단 해외가 훨씬 낫단 생각에 부랴부랴 알아보았다. 친정 부모님, 그리고 우리 4 식구까지 함께 떠날 일본을.


아직 부모님이 정정하시기에 휴양으로 많이 가는 후쿠오카보다는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하지만 즐길 거리가 많은 오사카로 정했다. 그리고 자유여행 보단 안전한 패키지여행으로 예약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다가왔다.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렘이 반을 한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설렘은 잠시,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다. 어린아이들 둘에, 부모님 두 분까지. 아무리 패키지여행이라 해도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남편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니, 가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이런 나와 다르게, 자식과 여행 간다고 며칠 전부터 새 옷에 새 신발까지 장만하셨다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을 뵈니 한편으론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괜한 걱정을 하는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공항을 향했고 이 여행이 순탄하기만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바람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이드를 만나 안내표를 받고 발권과 수화물을 붙이기 위해 움직이자마자 친정아빠가 한 마디 하셨다.


이런 건 가이드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가? 난 저번에 친구들이랑 해외 갈 때 가이드가 발권도 해주고 짐 붙이는 것도 도와줬는데.


여행 걱정에 밤잠까지 설쳤는데 아빠의 말 한마디는 나의 예민한 감정선을 건드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빠 생신을 기념해 가는 것이기에 불뚝 솟아오르는 말을 집어삼켰다.


아빠, 나도 패키지여행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어. 그리고 짐은 당연히 본인이 부쳐야지.

수속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짐까지 붙이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결국 공항에서 해결하려던 아침도 먹지 못하고 급하게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출발 전부터 시작된 부모님의 불만은 안타깝게도 2박 3일 내내 이어졌다.


음식이 너무 달다, 짜다.

양이 적다, 많다. 맛이 있네, 없네.

가이드가 별로네, 걸음이 너무 빠르네 등등


지금도 이때를 생각만 하면 뒷목이 뻐근하다. 하지만 이건은 애교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아빠는 가는 관광지마다 가이드에게 흡연실을 묻기 바빴다. 담배를 피우고 오시느라 다른 관광객들을 기다리게 만드셨다. 25명의 여행객 중 흡연자는 단 1명, 우리 아빠뿐이었다. 매번 흡연으로 지연되는 움직임에 나는 가시방석에 앉았고, 화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난 예의 없는 사람,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되진 않았을까 항상 곱씹을 정도로. 이런 내게 아빠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결국 나 역시 참았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 담배 좀 그만 피우면 안 돼? 아까 전에도 폈잖아. 사람들 표정 안 보여?

하지만 부모님은 적반하장으로 몇 분 늦었다고 그려냐,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 사람들이 문제라며 되려 화를 내기도 했다. 나 역시 말이 곱게 나올 리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이틀차부터 멀찍이 떨어져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민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우린 버스 안에서조차 멀리 떨어져 앉았다. 아빠의 몸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도 맡기 싫었다. 나중엔 부모님의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화가 느껴지는지 부모님은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즐겁게 떠난 여행이 무겁다 못해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여행으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다시 엄마 아빠랑 여행 오나 봐라.'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양귀자 모순 중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생일이라고 이렇게 여행도 보내주고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고. 다신 부모님과 여행은 안 가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온 힘으로 삼켰다. 이 말을 뱉으면 좋았던 기억마저도 모두 숲으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




며칠이 지나고 나니 나의 마음은 노랗게 익은 벼이삭처럼 누그러졌다. 그리고 참길 잘했다 싶다.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말, 엄마 아빠와 여행 다신 안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부모님과의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게다가 남들과 함께 떠나는 것은 더욱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냥 제주도로 우리끼리 여행을 갈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속도대로 천천히 즐겼다면 모두가 즐겁고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했다. 하루 2만 보는 기본으로 걷는 일본 여행을 잘 따라다니신 부모님께, 그리고 장인 장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간다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않고 웃으며 함께 해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힘들단 투정 한 번 없이 2박 3일 내내 잘 걸어준 두 딸들에게도 너무 고맙다. 돌이켜보니 내가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나의 까칠한 승질머리만 고쳤다면 즐거운 여행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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