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잔소리보다 한 장의 편지
말로는 으르렁,
글로는 다정다감.
낮동안 으르렁 거리느라 목이 쉰 사자 엄마는
아기 사자들이 잠들고 난 뒤에야 숨을 고르며 안정을 찾는다.
한 밤의 고요한 나만의 공간, 책상 앞에 앉아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적당히 큰 메모지와 귀여운 스티커를 골라본다.
아이를 떠올리며 짧은 손 편지를 사각사각 써 내려간다.
"시윤아, 어젯밤에 엄마한테 혼나서 많이 속상했지?
엄마도 시윤이한테 큰소리치는 것 줄여볼게,
시윤이도 노력해 줄 수 있지?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 만나^^
(아! 그리고 오늘 점심 시윤이 최애 카레라이스래! :D) "
"시윤아, 오늘 학교에서 '참기 세 번' 미션!!
- 수업시간에 떠들고 말하지 않기 V
- 친구한테 장난치고 싶은 마음 참아보기 V
- 복도에서 교실에서 뛰지 않기 V
오늘 미션 성공한 것에 체크하고 갖고 오기!
사랑해 아주 많~~ 이! "
언젠가 sns에서 어떤 엄마가 아이 유치원 도시락통에 '도시락 편지'를 매일 붙여 보낸다는 것을 보았다.
도시락통을 꺼내자마자 보게 되는 엄마의 사랑의 메시지. 얼마나 행복할까?
'말' 보다 '글'이 편하고 좋은 나.
입으로는 잘 되지 않는 따뜻한 말을 '글'로 전해보자.
그래서 시작하기로 한 것은 바로 "필통 편지"였다.
전날 밤에 두 아이 필통 안에 메모지편지를 몰래 넣어둔다.
학교에서 필통을 열어보는 아침 첫 시간,
엄마의 깜짝 편지를 발견하고 미소 지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내심 흐뭇하다.
기분 좋게 시작하는 하루를 선물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이 녀석들이 알까?
매일 써주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꾸준히 쓰려고 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필통을 열었는데 편지가 없으면, 이 녀석들 나름대로 서운한가 보다.
"엄마, 오늘은 왜 필통편지가 없었어요?"
"응? 답장이 없어서? 엄마도 편지 좋아해"
다음 날 아침, 내 책상 위에 메모지가 올려져 있다.
"베개 밑을 보시오."
베개 밑을 들춰 보니, 큰아이가 쓴 답장이 고이 숨겨져 있었다.
필통 편지에서 시작된 "베개 편지"라니.
그렇게 우리의 교환 편지가 시작되었다.
아홉 살 둘째는 좀처럼 답장을 써주지 않는다.
편지구걸을 해야 겨우 한 장 받아볼까 말까.
그래도 아침마다 필통을 열며 편지를 찾는 설렘은 분명 즐기는 것 같다. 편지가 뜸할 땐 은근히 서운한 기색이다.
역시 나와 닮은 큰 아이는 글로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서랍편지"니 옷장편지“니 하며 집 안 곳곳에 숨겨놓고 나더러 찾아보라며 장난을 친다.
내가 두 아들을 키우며 좀 더 살갑고 가깝게 지내는 비결 아닌 비결이 바로 "필통 편지"가 아닐까 싶다.
아들과 진지한 대화가 어색하거나,
전 날 사과를 하지 못한 채 아이가 잠들었거나,
혹은 아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일 때
필통 속 작은 편지는 사소하지만 큰 힘을 발휘한다.
나는 이 작은 메모지 안의 짧은 글귀가 아이가 지내는 하루의 시작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작은 미소를 선물해 주었다면 그걸로 큰 선물이 된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메모지를 꺼내고, 펜을 든다.
필통을 열어 편지를 넣으며 내일 활짝 웃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