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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6. 곰탕을 먹으며

물에 빠진 고기

by 단이이모

팀원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서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감히 말할 수 없는 신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복날이 그렇게도 싫었다. 초복, 중복, 말복, 무슨 놈의 복날은 그리도 많은지, 복이 붙은 날마다 몸보신을 해야 하는 상사들을 모시고 삼계탕에 갈비탕에 오리탕에, 하여간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다녔다. 몸보신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던 젊은 피가 들끓었던 그 시절, ‘탕’으로 끝나는 음식들은 모두 어른들의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엄마 아부지도, 할머니도, 부장님도 하나같이 그런 음식을 좋아하니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삼계탕 보단 노릇노릇 갓 튀겨낸 통닭이, 갈비탕보단 달달 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양념갈비가, 오리탕 아니죠,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낸 오리훈제가 얼마나 맛있다고요! 물에 빠뜨린 고기가 왜 그렇게 맛있다고 하시는 건데요!


그랬던 내가 아주머니가 되어 하고많은 음식점 중 나주곰탕 전문점에 앉아 곰탕을 시켜 먹고 있다. 복날의 ‘복(伏)이 내가 아는 그 복(福)이 아닌, 더위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어언 몇 년. 복날의 숨겨진 뜻을 알게 된 듯, 진한 국물에서 우러러 나오는 시원한 뒷맛을 알아버리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나 생각하니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처음 만났을 때, 어쩜 이리도 식성이 맞질 않는지 둘 다 신기해했다. 남들은 ‘우리는 취미가 잘 맞아요’, ‘생활패턴이 비슷해요’, ‘공통 사가 비슷해요’ 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찾기 바빴을 때에, 우리는 서로가 어마어마하게 극과 극의 사람임을 알고 감탄해했다. 나는 간간히 서양음식을 먹어줘야 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피자, 햄버거, 카레를 먹지 않았다. 거기다 양념 입힌 고기는 육해공 마다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 본연의 맛이 흠뻑 배어 나오는 수육과 소금구이를 선호했다. 이유인즉 배달도 오지 않는 깡 촌에 살아서, 어머니가 어려서 외국음식은 해준 적이 없어서라고 했으나, 누구는 인도에서 나고 자랐나. 한국인이라면 참지 못하는 그 제육덮밥을 싫어하는 건 어찌 설명한 건가요.


더 기가 막히는 건 나는 한평생 먹질 않는 소고기 뭇국도 돈 주고 사 먹는 남자라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또는 상갓집에 가면 공짜로 두세 그릇은 먹을 수 있는 그 소고기뭇국 말이다. 뭇국도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남편을 만나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마상에. 물에 담긴 고기는 먹지 않는다라는 나의 일관성만큼이나, 물을 머금은 고기는 그 무엇이든 환영하는 남자의 만남이라니. 이런 점에서는 아주 죽이 잘 맞는 커플임엔 틀림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함께한 세월이 한 해 두 해 쌓여가며 남편은 나에게 나는 남편에게 스며들어갔다. 남자는 마라탕과 양꼬치를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여자는 탕 요리의 국물 정도는 복스럽게 들이키며 장단을 맞춰줄 정도가 되었다. 처갓집은 맵고 짠 양념을 기피하는 사위를 위해 점점 더 싱거운 음식으로 해다 나르기 바빴고, 시댁은 여섯 살짜리 입맛을 가진 며느리의 아침상에 양념 갈비와 갓 구운 스팸을 올리는데 정신이 없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맛있게 먹고 중간에서 만나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그어진 선을 희미하게 만들어 모든 순간을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비싼 삼계탕을 시켜놓고도 깍두기에 밥만 먹고 오던 시절이 불현듯 지나간다. 나는 절대 나이 들지 않는다, 고로 보신탕은 필요 없다는 의연한 결의마저 허물어지게 하는 것이 결혼생활일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모를 뻔 한 ‘탕’의 진정한 국물맛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몰랐던 세상에 대해 남편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국물 맛이 깔끔한 곰탕을 혼자 시켜 먹고 앉아 있자니 여기에 소주 한 잔을 좋아할 그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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