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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7. 그곳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곳은 응꼬.

by 단이이모

나는 한평생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한 시간을 넘게 칫간(전라도 사투리-화장실)에 앉아 있는 남편도, 아침마다 안간힘을 주는 엄마도 멀쩡한데 그것이 나에게 오고 말았다. 그들보다 훨씬 모범적 나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그런 느낌을 아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인가 ‘항시’ 그곳이 열려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신체 일부라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건지, 그곳에 공기가 살랑살랑 드나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었다. 예전만치 꽉 다물어진 것이 아니라 슬쩍 열려있던 것이다! 이때부터 말랑말랑 한 물집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곳에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매우 매우 작은 소도시기에 항문외과가 없고, 일반 외과에 가도 수술은 해주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 왈, “딴 데 가서 허구와유, 내가 소독을 잘해줄 텡게.”


그날부터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내 마음의 준비를 해놔야 했다. 유튜브와 블로그에 올라온 각종 후기들을 섭렵하며 치질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질병인지에 대해 탐독하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취를 할 것이며 비록 수치심이 들긴 하지만 수술은 짧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가 찐이다. 거사를 치른 그곳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며 팔딱팔딱 뛴다고 했다. 더욱이 수술 후 변을 보는 일이 극강의 공포다, 지옥 경험이다, 칼을 낳는 느낌이다, 커터칼이 쏟아지는 것 같다는 둥 리얼한 후기들이 쏟아졌다.


나는 이렇게 모은 정보들을 시시각각으로 동생에게 공유했다. 그녀는 나의 치질 동기이다. 결혼 전 살짝 낌새를 보이고 있었는데 애기가 태어나면서 더 심해졌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잘 이야기하면 자매 할인 같은 거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시기에 공교롭게 남편 역시 이곳과 관련된 수술을 받았다. 항문 협착증이라나 뭐라나. 살다 살다 항문에도 협착증이 생기는지 처음 알았다 (하여간 이 남자를 만나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운다). 내가 아프다고 할 땐 콧방귀도 꾸지 않던 그가 자신의 그곳이 아프다는 소리를 듣더니 쏜살같이 수술날짜를 잡아왔다. 치질보단 고통이 덜 할 것이고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그래, 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여보가 먼저 하고 와.


남편은 수술 후 조금 아픈 느낌은 있지만 컨디션은 괜찮다는 연락을 해왔다(우리 부부는 주말 부부이다). 너무 말짱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3일째 되는데 다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운전하고 있는데 어지러워 등에 식은땀이 나고 회사까지 못 갈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병원까지 간 남편은 자신의 증상이 하반신 마취 부작용임을 알았다. 수술받기 전 부작용에 비스므레 한 것에 대해 설명 들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그 1%만 겪는 부작용을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앉아 있거나 서있기만 하면 속이 뒤틀리고 막 안 좋다가도 누워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지러움과 두통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마취 후유증으로 이틀을 꼬박 누워 시간을 보냈다.


소변을 볼 때 항문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뒤에서 떡 하고 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문의 통증 없이 앉아 있는 것이 이리 행복한 것이었는 지를 정녕 몰랐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을 실 때 필요 없는 것은 빼고 꼭 필요한 것만 넣어서 만드셨다더니 진짜였던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나의 항문을 볼 수 없는 처지로써 내 몸 뒤에 숨어있는 것이라 얕봤더니, 어느 날 이렇게 대반격을 가한다. 이런 요망한 것.


남편의 회복기까지 지켜본 나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극심한 고통을 이겨낼 깜냥도 없었는데 다행히 의사 선생님도 경과를 좀 더 지켜보자 하셨다. 지금은 화장실에선 핸드폰을 절대 하지 않으며, 앉아 있는 시간도 5분으로 정해 놓고, 유산균도 제 때 챙겨 먹으며 아주 아주 겸손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뿐 쓸모없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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