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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들(장비빨?)

by 소연

뭘 하든 준비물이 있어야 한다. 맨 몸으로 하는 운동마저 재미있고 기분 좋게 하려면 준비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외국사람들이 등산하는 우리나라 아줌마 아저씨들의 옷을 보고 전문 산악인 같다고 했던가? 그들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내 경험상 동네 야산을 가도 제대로 갖춰 입고 나갔을 때의 기분은 다르다.

장비들이 잘 갖춰져야 일의 능률도 좋아지고 완성도와 만족도가 높아진다. 초보 때에는 얼마나 그 취미를 유지할지 몰라 대충 준비를 한다. 그러나 단 몇 회만 경험하게 되면, 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들에 관심을 갖는다. '나도 저 장비가 있으면 좀 더 내 취미에 물이 오를 텐데~'하며 '나도 저 장비들을 갖고 싶어. 사야지~'에 이르게 됨을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처음 추이미였던 '붓글씨' 쓸 때는 붓, 화선지, 먹, 벼루, 붓글씨 쓸 때 까는 담요, 고서(옛날 책) 등의 장비를 갖추는데 마음을 썼다. 그 많던 붓과 화선지, 여러 개의 먹과 벼루, 담요들은 다 정리하고 지금은 호와 이름이 새겨진 낙관, 빨간색의 먹, 작은 벼루 1개, 작고 가는 붓 1개만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언젠가 다시 붓글씨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최소로 남겨 놓은 흔적들이다.


그다음 추이미인 퀼트를 할 때는 원단, 바늘, 실, 가위, 부자재, 퀼트 책 등에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장비를 얻고자 돈을 지불했었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퀼트 원단들 빼고 부피가 크지 않아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그다음 추이미 옷 만들기.

어머니가 물려주신 재봉틀이 우리 집으로 온 날부터 얼마간 만족스럽게 재봉틀을 사용했다. 옷을 만들 때 원단과 원단을 이으면 시접이라는 것이 생긴다. 시접이란 옷 솔기 가운데 접혀서 속으로 들어간 부분을 말한다. 어째 설명이 더 어려운 듯하다. 아무튼 박음질 후에 원단이 풀려서 지저분하지 않게 하기 위해 시접처리를 해야 한다. 나의 가정용 재봉틀에는 지그재그로 바느질하여 올이 풀리기 않게 하는 시접처리 기능이 있다. 올이 풀리지 않는 기본적인 기능은 하지만, 깔끔한 뒤처리가 안되어 좀 많이 허접해 보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버록 재봉틀'이 있어야 한다. '갖고 싶다.'는 '사고 싶다.'로 이어졌고, 검색을 시작했다. 종류가 많아 직접 보고 고르기로 결정하여 매장에 가서 그때 당시 56만 원 정도의 '오버록 재봉틀'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얼마나 취미생활을 진~하게 하려고 그것까지 샀어?" 하며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좋아서 그런 반응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포장을 뜯어 설치했다. 느릿느릿 설명서를 보면서 실을 연결하고, 쓰지 않는 원단에 실험을 했다.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도 크고 페달 감각이 낯설었지만, 오버록이 되어 나온 모습은 깔끔했다. 대만족. 이렇게 '오버록 재봉틀'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어느 날, 동네 학교 운동장이라도 걷는 운동을 하려고 야심 차게 트레이닝복을 샀다. 키가 작은 탓에 늘 그랬던 것처럼 바지의 길이를 줄여야 했다. 그전이라면 세탁소에 맡겼겠지만, 당연히 손수 수선을 시작했다. 적당한 길이만큼 자르고, 단을 접어 핀으로 고정하고 재봉틀 앞에 앉았다. 간단한 것이라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2시간 넘게 붙들고 있었다. 다른 바지들도 수선한 경험이 있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의 작업인데, '이게 왜 이러지?'라는 생각으로 맘과 몸이 스트레스로 가득 찼었다. 재봉틀은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데 바늘땀이 늘어지고 규칙적으로 꿰매어지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스판이 들어간 원단이라 그런지 단이 늘어나기도 하고 아무튼 엉망이 되었다. 그러니 뜯고 다시 하고, 뜯고 다시 하고를 반복하니 더욱 엉망이 되었다. 원인을 알고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미끄럽고 스판이 있는 원단은 노루발 중에 플라스틱이 노루발 밑에 붙어있는 것을 사용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그 노루발을 끼우고 사용했는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더 검색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내용이 검색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너무 집중하며 검색을 하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신체적 스트레스도 강하게 오기 시작했다.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려 할 때 '워킹풋노루발'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노루발 이었다. 좀 특이하게 생겼다. 이것을 가정용 미싱에 갈아 끼우면 땀이 고르고 원단이 밀리지 않고 바늘땀이 예쁘게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사서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직장을 다니던 때라 그 주 토요일에 동대문 시장으로 가서 그것을 구입했다. 처음 사용하는 거라 재봉틀에 끼우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곧바로 워킹풋노루발의 성능을 시험했다. 신세계였다. 보통 노루발을 사용할 때보다 원단과 노루발 사이의 접지력이 매우 좋다는 것이 느껴졌고 바늘땀이 들뜨지 않고 예쁘게 나왔고 조금 두꺼운 원단도 잘 밀어내며 박음질이 잘 되었다. 역시 장비가 훌륭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워킹풋노루발'이라는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중부교육기술원 한복반에서 깨끼바느질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곱솔이라고 하는 깨끼바느질은 시접처리를 오버록으로 하지 않고 3번 박음질을 하여 시접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품이 많이 들어가지만 깔끔하고 뭔가 고급스러운 바느질이다. 곱게 박음질을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가정용 재봉틀에 워킹풋노루발을 끼우고 해도 기술원에서 공업용 재봉틀로 하는 것보다 곱게 나오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맞다. 생각은 '공업용 재봉틀을 갖고 싶다.'가 '사고 싶다.'에서 '살 까?'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것은 고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가격도 비싸지만, 자리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한 3개월 이상 고민한 것 같다. 드디어 공업용 재봉틀을 사기 위한 구실을 찾았다. 이 때는 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한 5개월쯤 지난 시점이었다. 퇴직하면서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뭔가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적당한 품목이 생각나지 않아 미루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참고로 주변의 퇴직하는 동료들이 새 차를 샀다거나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거나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태 미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것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나 보다.

'아~하! 나에게 아직 선물을 사주지 않았지? 이건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선물이야. 이 재봉틀을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

이 생각을 하니 어떻게 어떻게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한복반 동료의 도움을 받아 모델을 정하고 주문했다.

배달이 왔고, 설치를 했고, 사용 설명을 들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나도~. 좋았다. 가족들은 이 재봉틀을 보고 그냥 웃어줬다. 나의 추이미를 인정해 주는 고마운 반응이다.


이 재봉틀로 우리 집의 커튼부터 시작해서 이불커버, 셔츠, 원피스, 바지, 점퍼, 손수건, 모자, 가방, 외투 등 많은 것을 만들었다. 확실히 힘이 좋다. '복잡하니까 가정용 재봉틀을 치울까?'라는 생각 했지만, 버리지 않았다. 공업용 재봉틀에는 단추구멍을 만드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단추구멍을 내야 할 때 꺼내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집에는 나의 추이미를 위한 장비들이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도 가족들이 잔소리를 하지 않고 이제는 오히려 흐뭇한 표정으로 봐주어 고마울 뿐이다.

이제 어느 정도의 장비를 갖추었다. 이제 끝일까? 예상하는 대로 아니다. 갖고 싶지만 오랜동안 참은 품목은 '공업용 오버록'이다. 가정용 오버록은 면원단에 사용하기에는 나무랄 데 없지만, 얇은 원단이나 좀 예민한 원단에는 조금 들떠 보이게 오버록이 되어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갖고 싶은 장비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더 이상 부피가 큰 것은 늘리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잘 참고 있다.

언제까지 참게 될까? 그것은 의문이다. 아쉽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장비를 100% 이용하여 즐거운 추이미를 이어나가겠다는 것이 지금 생각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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