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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송 Dec 06. 2024

영어준비운동?

실패한 엄마표에서 아이표가 되기까지 - 두 번째 이야기

소신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아이에게는 엄마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소신 있는 엄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와 관계가 좋다는 전제 하에 어릴 때는 여러모로 학원보다는 엄마표라는 생각은 하지만 잘 해낼 자신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이 길이다 싶어 나름 노력은 하면서도 간간히 유혹에 흔들리는 건 사실이니까. 한순간 방향을 틀어 학원으로 달려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이런 소신 없는 내가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엄마표 영어를 고집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집의 경제사정(외벌이)과 지호가 학원 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거. 이것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영어준비운동

"영어 거부"로 시작해서 나중엔 길을 잃은 나의 검색 키워드 중 유독 눈에 들어온 말이 있었다. "영어준비운동". 영어를 하는데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고? 뭘 하라는 거지? 영어준비운동은 강압적인 학원을 다니다 거부감이 온 아이를 위해 현직 영어 선생님인 엄마가 다시 처음부터 영어 정서를 쌓아갔던 방법이다. 처음 접했을 때 내 두 눈이 반짝였다.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지금껏 내가 해 온 것, 영어라는 언어에 호기심을 가지길 바라며 시도한 모든 노력들이 일종의 영어준비운동이었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 관심과 흥미부터 쌓아가는 것. 아, 이제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고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 지호가 외국어를 잘 배웠으면 하는 것도 넓은 세상을 배경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거다. 다른 나라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 자극.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미션이다. 지구본과 지도책 같은 학습 느낌이 아니라 긴장을 더 풀고 접근할 신박한 뭔가가 필요했다. 검색을 거듭한 결과 세계지도 '러그'를 주문했다. 우리는 엉덩이로 대륙을 하나씩 깔고 앉아서 그 위에서 꼬깔콘도 먹고 알까기도 하고 책도 보았다. 책을 보다가 궁금한 나라나 지역이 생기면 엉덩이를 치우고 찾아본다. 이렇게 놀이처럼 하다 보니 서서히 관심이 생기는 거 같다. 운이 좋게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이벤트와 시기가 맞으면, 그 효과는 몇 배 더 올라간다.



세계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들이밀자

곤충을 좋아하는 지호에게 영어로 된 곤충 도감을 사주었다. 물론 영어는 아직 못 읽지만 그림이나 사진을 보며 곁다리로 알파벳이 이렇게 생겼구나만 알 수 있기를. 특히 도감은 사진의 비중이 커서 정말 자주 펼쳐본다.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우리 아들이 또 좋아하는 건 미술 수업. 특히 만들기를 좋아한다. 우연히 알게 된 프로그램이 있는데 신청을 하면 만들기 키트가 택배로 배달되어 온다. 각자 편한 시간에 유튜브 영상을 틀고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 만들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주제도 다양해서 지호가 좋아하는 곤충과 동물로 시작해 크리스마스, 할로윈, 우주 등 정말 재미있고 유용한 활동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진행되지만 보고 따라 만들면 되니 영어를 못해도 거부감이 없다. 작품이 완성되면 성취감은 덤으로 온다. 단 영상 속 선생님과 아이의 만들기 속도가 같을 순 없으니 그때 엄마의 역할이 살짝 필요하다. 리모컨을 들고 있다가 스탑이라 말하면 정지, 스타트하면 다시 재생. 아주 중요한 임무다.



좋아하는 걸 영어로 접해보기



외국인 이모를 만나다

관심과 흥미를 끌어올리다 보니 코로나가 끝이 났고 하늘 길이 다시 열렸다. 유일하게 현직에 남아있는 친구가 한국으로 비행을 온단다. 8년이 넘게 같은 집에서 동고동락하던 사이라 우리가 호주에 있을 때도 몇 번 비행을 왔었고 백일 된 지호를 만난 적도 있다. 인천에 있는 호텔에서 바로 집으로 데려왔다. 관광 따위는 집어치우고 우리는 1박 2일 동안 수다만 떨었다. 몇 년간의 소식을 업데이트하다 보니 1박 2일도 부족할 지경. 그 당시 지호가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Hi', 'Yes', 'Thank you', 'Bye', 이 네 가지가 다였지만, 우리의 끝없는 수다를 지켜보았고 이모와 지호 사이에도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호보다 한 살 어린 아들을 키우는 킴 이모는 지호와 게임도 하고 공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이 무척 좋았는지 한동안 킴 이모 얘기를 자주 했고 몇 달 후 선물처럼 이모가 다시 왔다. 언어를 몰라도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할 수 있고, 거기에다 공통된 언어가 있다면 더 재미있고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라도 알아가는 거 같아서 뿌듯하다. 이제 영어거부감이 없어지려나.  



외국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경험



화룡점정 한 달 살기

우리 집 영어준비운동은 1학년 겨울 방학에 다녀온 호주 한 달 살기로 그 정점을 찍었다. 킴 이모가 다녀간 뒤 지호가 좀 변하는 게 보이니 욕심이 생긴다. 마침 지호의 호주 친구 집에서 초대를 했고 더 늦기 전에 가기로 결심했다. 한 달 넘게 그 집에서 지내며 지호의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듯했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서 지호가 원해서 본인이 선택한 영어공부가 시작되었다. 호주에서 파닉스를 대충 배워왔으니 개학까진 지호가 좋아하는 동물 교재로 영어의 소리와 문자에 더 익숙해지기로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좀 흐지부지 되긴 했으나 한 달 동안 매일 함께 했고 즐겁게 했다.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였다. 지금은 게임과 영어공부를 접목시킨 게이미피케이션 어플로 영어와 더 친해지는 중이다. 게임처럼 승부욕을 자극하고 수다쟁이 아들의 입을 ‘영어로’ 열게 하니 우리 아들에겐 아주 잘 맞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아이표 영어의 시작



아이표의 시작

망했다 생각한, 아니 망했던 나의 엄마표 영어가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좀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다시 접근해 보자 했고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집중하다 보니 이렇게 아이표 공부가 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정답이라 하기엔 아직 갈 길이 천리이고 만리이지만. 그래도 영어와의 첫 만남은 재미있었으면 좋겠고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반의 반쯤은 이루어진 거 같다.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하면 선택은 본인의 몫. 이건 공부뿐 아니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 분담일 듯. 엄마표와 아이표는 정말 한 끝 차이다.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욕심은 깔끔하게 엄마의 성장에 쓰는 걸로 하겠다. 앞으로도 우리는 한 팀이고 나는 수석 코치로 나의 선수를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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