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하고 싶은가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 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 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중에서
연말, 나의 루틴이 되어버린 새해 계획 세우기.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지만,
결국에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리스트를 마주한다.
나로, 엄마로, 아내로, 자녀로, 크리스천으로 등등등, 수많은 목표가 의무감이 되어
리스트가 점점 길어진다.
하지만 정작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두려움이라는 그림자가 먼저 찾아온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압도되어
시작도 전에 버거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삶에서 준비와 용기의 역할이 종종 혼동된다.
나의 목표를 구체화하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에
적절한 준비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없는
이유만 잔뜩 쌓은 준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행을 가고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가 아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가는 느낌이랄까. 그 바운더리 안에는 존재해야 할 것 같아서 하려고 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용기 있게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선택한다면 좋았든 안 좋았든 후회는 없을 텐데 말이다. 해야 할 이유를 갖춘 준비는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하지만, 그 준비만으로는 결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에세이 한 구절이다.
탱고를 배우는 데 '눈'이 없어도 충분히 춤출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 하지만 이 깨달음은 단번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수십 번의 실패와 두려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용기를 내어 탱고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였다.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용기였다.
'해야 한다'는 머리에서 오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기 때문일까.
'해야 한다'엔 조건과 자격에 주눅 들지만,
'하고 싶다'엔 마음만 있으면 되니까.
신기하다.
왜 하고 싶은지 알게 되면,
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따라온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갖는 순간 '왜', '어떻게'를 생각하게 된다.
글을 써야 한다는 다짐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일 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들,
써야만 하는 순간들이 따라옴을 느낀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거다.
처한 형편에 따라, 목표의 크기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와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두려움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도 한 발 내딛을 때
비로소 용기가 나를 이끌어줌을 경험한다.
그 용기는 결국,
두려움을 넘는 용기
지금을 받아들이는 용기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는 용기
그래서 다르게 살려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