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송 Nov 14. 2024

아이도 산을 넘는다

기적은 연습 끝에 온다




나는 이미 걸어본 길이라 답을 알지만,
아이는 이제 막 시작한 걸음이라 서툴다.
그래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아이가 자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지금도, 자라 가고 있다.



딸아이가 일곱 살에 피아노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나는 피아니스트인 엄마다. 예민한 귀를 가진 덕에 딸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 냉정한 조언이 독설로 튀어나가는 건 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습 중 아이의 소리가 귀에 닿을 때면,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소리가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아이에게 피아노가 즐거운 도구로 남기를 바라면서도, 음악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려주고 싶었다.


6살이 끝날 무렵,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바이엘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 년 후,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무대에 드레스를 입고 올라가 연주하는 화려한 순간만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막막했다. 내 기준은 높고,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매듭을 지으려는 성격인데 과연 일곱 살 아이가 이 모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큰 추억 하나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아이의 도전을 응원했다. 그리고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생각보다 깊이 빠져들었다. 자기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기에 피아노 앞에 앉고 또 앉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하지만 그 작고 여린 손에도 어김없이 어려움이 찾아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습.

연습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과제가 쌓여가는 아이러니.

어제 잘 되던 부분이 오늘은 되지 않는 억울함.

손가락도 돌리기 힘든데 발까지 써야 하는 난감함.

그런 순간순간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드레스 입고 멋지게 무대에 오르는 상상을 하며 시작했지만, 현실은 상상과 너무도 달랐다. 그 차이와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아이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연습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곁에 엄마가 있어도, 아이에겐 외롭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하루하루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시간은 그저 찰나일 뿐. 순간을 위해 이토록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오직 아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길을 걷다 보면 기대와 다른 순간이 찾아온다. 때로는 쉬고 싶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사실, 아이는 이미 많은 산을 넘어왔다.  

15개월, 첫걸음을 내디뎠던 그때, 땅에서 발을 떼는 것이 아이에겐 가장 큰 산이었다.

24개월, 어린이집에 입소하며 엄마와 떨어질 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역시 큰 산이었다.

그리고, 일곱 살의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 매일 연습하는 과정 또한 아이에게는 가장 높은 오르막길이었다. 곁에 엄마가 있어도, 결국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건 오직 아이 스스로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로서 곁에서 응원하고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산을 대신 넘을 수는 없다. 넘어질 때 손을 잡아주고, 울면 눈물을 닦아주고, 포기하고 싶을 때 다독여 줄 순 있어도 그 길은 아이가 스스로 걷는 여정이다.








콩쿠르 전날 밤, 딸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엄마, 내가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괜찮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상을 받으면 네가 기뻐서 나도 기쁠 거고, 상을 받지 못하면 네가 속상해할까 봐 안타까울 뿐이라고. 엄마는 네 마음이 우선이라고.


그렇게 아이는 오늘도 산을 넘는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