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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아이에미 Oct 31. 2024

무쓸모 계약서, 결국 노예

너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스마트폰의 노예로 전락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스마트하게 사용하기를 바랐다. 어른조차 절제하기 힘들기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길을 잘 들였으면 했다. 정작 우리 집 제일 큰 아들(이라 쓰고 남의 편이라 읽는 그분)도 퇴근 후엔 소파에 도킹되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니 말이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못 떼며 보조개 쏙 들어가게 웃는 그분 보고 있노라면 무생물에 질투가 절로 난다. 내 얼굴 보고도 좀 웃어주면 안 될까? 나도 좀 재밌게 생겼잖아!


제일 큰 아들부터도 이 모양이니 아이에게 솔선수범 보이기 쉽지 않은 난이도 최상의 환경이다. 공동양육 따윈 없는 철저하게 분업화된 외벌이가정인지라, 자녀교육 부분 역시 상의할 남편이 있어도 없다.

육아선배인 친정엄마는 디지털 원주민을 낳아서 길러본 적이 없으니 '우리 땐 이런 걱정 없었는데. 요즘엔 애들 키우기 너무 힘들구나'라는 위로 섞인 한마디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있는 조언 따윈 없다.


디지털 원주민을 낳은 창조주답게 인터넷과 유튜브 검색으로 정보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육아전문가, 교육전문가, 자녀들을 서울대 보냈다는 유명작가, 정신심리학과교수 등등 스마트폰의 유해성과 똑소리 나게 사용하는 팁을 전해주는 고수들은 너무 많았다. 반드시 초장에 우리 아이 스마트폰 사용습관을 잘 잡아야 나중에 큰 화를 면한다는 예언과도 같은 첨언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분들의 꿀팁을 모아 모아 그럴싸한 계약서도 작성했다. 계약서 양식을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싶고, 아무튼 엄청 뿌듯했다. 아이에게 계약서를 내밀며 친절하게 설명도 했다.

계약서는 너와 내가 협의해서 작성한 내용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의 증거라고. 그리고 사용시간이나 사용가능한 어플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 뒤 아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계약서에 반영해 줬다.


계약사항에 만족한 을은 쿨하게 지장을 찍었다. 이때만 해도 스마트폰만 생긴다면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사근사근 말도 잘 듣고, 스스로 어린이로 거듭난 듯 일주일 가까이 알아서 공부를 했으니 핑크빛 미래를 꿈꿔볼 만하지 않은가.


Image by Edar from Pixabay




계약 위반은 개통 첫날부터였다.

그래, 나도 이해한다. 스마트폰을 개통한 누구나가 각자의 감성과 취향을 한껏 반영해 커스터마이징을 하지 않는가.

나도 안다.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거든요.

아이도 시작했다. 배경화면을 바꾸고, 벨소리와 알림음을 설정하고, 어플을 깔았다 지웠다를 수십 번. 생애 첫 스마트폰을 붙들고 해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을까.


스마트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쿨하고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출생 연도 분류 상 MZ세대인 아줌마는 무려 일주일 간의 적응기를 제공했다. 요구도 없는데 주어진 무상제공이었다. 일주일 정도 마음껏 만지작거리다 보면 그것도 시들해지지 않겠나, 하는 돌이킬 수 없는 판단 오류를 범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안심박스 어플과 구글 패밀리링크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에 제한을 두니, 주어진 시간을 다 탕진할 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게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다행인데, 갑자기 모르는 단어가 생각나고 숙제로 조사해 오라고 했는데 못했다며 사용시간 연장을 당당하게 요청해 왔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렇게 사용시간을 연장해 주고 깜빡하는 사이 아이는 또 유튜브 숏츠에 빠져들었다. 부리나케 쫓아가

“검색한다며 또 숏츠 보고 있어?”하고 눈을 부릅뜨며 날카롭게 쏘아대니, 아이는 검색 다 하고 ‘잠깐. 이제 막. 딱 하나’ 본 거라고 억울하다며 되려 역정을 낸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너구나.


계약을 어기는 건 기본, 본업인 공부(기껏해야 문제집 몇 장 푸는 게 전부인 혼공족)도 할 생각을 안 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소파 양끝으로 각자의 머리를 두고, 발을 맞댄 다정한 포즈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아빠와 딸의 모습을 보면 정말 데칼코마디도 이런 기 막힌 데칼코마니가 없다.


경고도 해보고 열공모드로도 바꿔도 보고, 울그락 불그락 인상 써가며 계약서에 의거해 스마트폰 금지나 압수, 심할 경우 해지를 할 수 도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해 봤다.


“너 왜 계약서 쓰고 약속 안 지켜? 계약서 쓴 거 생각 안 나?” 하고 신경질적으로 물으니

“계약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안 나.” 당당하기가 이를 데 없다.




, 그러니? 아. 계약서가 너무 길었나.

나만 너무 진지했고, 나만 너무 진심이었나 보다.

 와중에 받아낼 돈이라고는 코 묻은 용돈이 전부인 아이를 상대로 공증이라도 받아둘걸, 위약금이라도 두둑이 걸어둘걸 하는 생각을 했던 건 안 비밀.


새끼손가락 걸고 한 약속도 안 지키는 아이를 계약서 운운하며 어른 취급했던 내 꼴이 우스워 화도 나지 않았다. 계약을 함부로 하면 인생 망한다고 따끔하게 설교하려던 진실의 입을 손으로 턱 막고, 코로 깊은 한숨을 뿜어내는 걸로 화를 삭인다.


틈만 나면 자녀교육 강좌를 신청해서 공부하고, 자녀교육 유튜브 알고리즘 따라 따라 인성, 심리, 뇌과학 등등 이것저것 찾아보며 '다시 잘 이끌어보자'라고 결의를 다져봐야 소용이 1도 없구나. 창조주인 부모님 말씀도 프리패스하는 마당에 일면식도 없는 옛 성현이나 유튜버 나부랭이의 말을 믿을쏘냐.


케바케(case by case), 애바애(아이 by 아이)라는 합리적 변명을 전제로 하는 저명한 분들의 강연 속에서 오늘도 길을 잃었다. 인성이 문제인지, 정신의 문제인지, 호르몬의 문제인지 감도 오질 않는다. 그럼에도 또 어딘가에 나에게 한 줄기 빛처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해법을 제시해 줄 신이 계시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망망대해 같은 유튜브 속에서 튜브 없이 헤엄쳐본다.


그날이 그날이고 어제가 오늘인 듯, 스마트폰이라는 공통관심분모 하나로 우리는 한 팀이 되어 널을 뛰며 살고 있다. 위아래 천지분간 못하고 미쳐 널 뛰는 사춘기 아이의 반대편엔 이 악물고 더 힘차게 발을 구르며 널 뛰는 아줌마가 있다.


누가 나만 이런 거 아니라고, 우리 집 애만 이런 거 아니라고 위로 좀 해 줬으면.


Image by lisa runn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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