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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공비행 Oct 29. 2024

학폭 피해자와 스쿨 카스트.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다. 원래 살던 곳은 잘 사는 동네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고, 이사한 동네는 꽤 괜찮은 신도시였다. 나는 이곳에서 좋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학 테스트를 봐야 하는 걸 처음 알았다.


 이사 당일, 전 학교 담임에게 연락이 왔다. 왜 학교에 나오지 않냐고. 전학 수속을 다 마친 후였기에 엄마는 어이없어했다. 분명히 전학 수속을 다 밟았는데, 어떻게 담임이 자기 반 학생이 전학한 줄도 모르냐고. 난 그 정도로 존재감 없는 캐릭터였나보다.


 이전에 살던 동네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애들이 반, 다니는 애들이 반인 정도로 교육열이 그렇게 높지 않은 동네였다. 이사한 동네는 달랐다. 금수저는 아니라도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학원 몇 군데씩은 다녔다. 돈 많이 든다는 골프 선수를 준비하는 애도 있던 걸 기억한다.


 하필 전학 후 일주일 뒤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가기 싫더라. 혼자 동떨어져 있을 게 뻔하니까. 그곳에서 왕따 인생이 시작됐다.


 전학해온 학교에서 의아했던 건 여긴 노는 무리와 놀지 않는 무리의 구분이 명확하단 것이었다. 예전 학교에서도 일진 비스무리한 애들이 있었지만 다들 섞여서 잘 노는 분위기였다. 여긴 달랐다. 잘 나가는 애들이 명확해 존재하고 아닌 애들은 따로 노는 분위기였다.


 수학여행 둘째 날 아침, 반에서 노는 부류로 꼽히는 김X혁이 나를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마구잡이로 던져진 아이들의 신발을 모두 정리하는 조건으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숙이고 들어간 게 잘못이었을까. 그렇게 왕따 생활이 시작됐다.


 쉬는 시간이면 반 아이들이 줄넘기 같은 걸로 나를 묶고 구석에 몰아 팼다. 체육 시간에 축구할 때 지면 무조건 내 탓이었다. 관심도 없는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여자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쌍욕을 퍼부었다.


 나를 왕따로 만든 주범은 김X민이라는 학교 짱이었다. 그러나 그는 왕따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작 왕따가 된 뒤엔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반에서 잘 나가는 애들이나 다른 학교 짱들이랑 놀기 바빴다. 내게 관심이 많던 애는 송X안이다. 그는 싸움을 잘해 노는 부류의 아이들과 몰려다니는 애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이진이었다. 일진 옆에서 입을 잘 털어 노는 애들과 붙어먹는 부류였다.


 왕따가 된 뒤 전학생 하나가 더 왔다. 내가 전학생 출신이니까 담임은 내게 전학생을 부탁한다고 했다. 교내 시설이나 동네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길거리에서 김X혁을 만났다. 그는 얘랑 다니면 너도 왕따가 되고 더러워진다고 말했다. 그 후 또 다른 전학생이 왔고 담임은 또 내게 부탁했다. 또 교정과 동네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는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학해온 친구는 자기가 일기에라도 왕따 피해 사실을 적어 제출해 선생님께 알려주겠다며 나섰다. 나는 그 친구까지 왕따가 되리라 생각해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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