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나다.
최 만성 씨는 땀이 식기 전에 작은 밤만쥬 두 개를 먹었다. 달콤하고 폭신한 것이 먹기도 간편하여
산행할 때 애용하곤 한다. 이제 내려가면 88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 거였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짜장면 집에서 한 그릇 먹는 게 순서인데, 내려가 봐야 할 것이다.
배가 좀 고프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집에 갈 작정이었다. 배낭을 정리하던 중에 '퍽'소리가
들렸다. 지금 도토리 떨어질 일도 없는 것이고, 솔방울이라면 그렇게 강한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만성 씨는 배낭을 메고 소리 난 쪽으로 가본다. 쉼터에서부터 경사진 곳이고
주로 리키다 소나무가 많은 지역인데 다른 나무들도 사이사이에 다투어 자리를 잡고 자라는, 여러
종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울려 터를 잡은 모양새였다. 땅에는 아직 부토가 돼지 안은 낙엽이 엉성
하게 쌓여 있었다. 만성 씨는 등산용 스틱으로 낙엽을 살상 헤치며 찾아보았다. 자기가 앉았던 의자
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소리를 들었던 것이라, 찾는 방향을 약 45도로 잡아 그 법위내에서 찾아보기
로 했다.
그저 흘려들을 수도 있는 소리였는데 그걸 무턱대고 쉼터 일대를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능
한 범위를 잡아 보기로 한 것이다. 단순히 소리만 들었을 뿐인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무얼 찾는
다는 게 엉뚱한 짓거리임이 분명했다. 허나 만성 씨는 자기의 호기심이 슬쩍 지나칠 수 없다고 내부
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바쁠 것도 없던 차에 시간을 내어 궁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해결하
고 싶었다. 어릴 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시절엔 그러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허락 되지
안았었다. 성인이 된 다음엔 무얼 알아보고자 하는 것도 먹고살기에 바쁜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었다.
만성 씨는 예정된 각도 내에서 갈지자로 착실하게 해져 나갔다. 무게가 상당한 무엇이라면 떨어진
점은 표가 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떨어져서 굴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낙엽이 쌓인
땅바닥에 이상한 걸 발견한다. 그 건 무거운 물체가 떨어질 때 생긴, 낙엽이 약간 흩어진 모양으로
보였다. 가운데 조금 파인 구덩이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등산 스틱으로 주위를 파고 손으로 흙을
퍼낸다. 반 뼘이 채 안 되게 파냈을 때 무언가 딱딱한 것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물체를 집어냈다.
그 건 제법 뜨거웠다. 만성 씨는 낙엽 위에 내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안경을 배낭에서 꺼내서 일단 사진을 찍어 둬야 하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꺼내여 구덩이와 주변을, 후에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을 찍었다. 그리고 검은 물체도 찍었다. 크기는 5센티미터 정도였고 검은색이었는데 껍데기가
반들거리는 물체였다. 검은 물체에 묻은 흙을 손으로 가만가만 씻어내고 보니 이 건 돌 같은 것이
아니라 곤충같이 생긴 것이었다. 만성 씨는 순간 긴장하여 멈칫하다가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였으니
걱정을 누르고 배낭에서 간식을 담아 온 플라스틱 투명 그릇에 넣었다.
휴지를 몇 마디 잘라서 그릇에 깔고 가만히 넣었다. 배낭에 넣기 전에 한 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배낭
을 꾸리고 둘러멘다. 구덩이는 다 메꾸지 않고 조금 흔적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떴다. 주변을 살펴보았으
나 인기척은 없었다. 만성 씨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고 약간 가파른 등산로를 스틱으로 짚으며 되도록
침착하게 걸어 내려갔다. 언제나 산행에서 내려가는 길엔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게 보통이다.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작용하는 셈이지만 그보다도 올라갈 때 힘들었던 것이 거의 반도 힘들지 않다는 게 마음을 가볍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힘든 걸 잘 이겨낸 게 기뻤다. 나이 팔순이 넘어 산행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안
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인데, 오늘은 날씨 때문인가 비교적 수월하게 돌았던 것이다.
만성 씨가 광교산 일주 전 코스로 잡는 거리에서 5분의 2가 되는 거리를 쉬엄쉬엄 걸었던 것인데, 마음
속으로는 아직 다닐 수 있는 것인가 보다 하고, 취미의 한 가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십 오육
년 전만 해도 70대의 남자들이 산에 다니는 걸 가끔 보았는데 요즘엔 그 연령대의 사람들을 볼 수가 없어
서운하기도 했다. 모두들 집안에 틀어 박혀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 건지.
스마트폰이나 머리 숙여 보는 사람은 숱하게 보며 사는 세상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습득한 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생각해야만
된다. 그보다는 어떤 곤충인가? 아직 이른 철에 왜 거기에 떨어진 것인가?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진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하늘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상상은 날개를 펴려고 한다.
하지만 집에 가서 생각하자 하고 발걸음을 정확히 딛는데 신경을 쓰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 바로 배낭을 열어 플라스틱 용기를 들여다본다. 아직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버스의 진동
에 시달려 옹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누라에게 유리병을 달라고 재촉한다. 인상이 좋은 부인은 남편
가져온 것을 보고 이양반이 또 무슨 바람이 불어 별 것을 다 갖고 왔나 보다 하는 짐작으로 찬장에서
자그마한 유리병을 꺼내 주었다. 만성 씨는 유리병에 검은 곤충을 넣고 아파트단지 근처 양지에서 뜯어
온 풀을 넣어 주었다. 봄이라 하기엔 이리지만 풀은 양지쪽에 파랗게 돋아난 것이 있었다.
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먹을 것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먹성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움직이는 동물은 그것이 곤충이라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유리병을 베란다 한 구석에 모시듯이
갖다 놓았다. 관찰하려면 길게 잡고 살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사건?을
기록해 놓았다. 후일에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샤워를 하려 화장실로 향했다. 마누라가 그 게
뭐냐고 물었다. 아직 모른다고 대답했다. 곤충 같은데 처음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 할 거냐고 재차 물었다. 관찰을 할 거라고 했다. "당신은 일거리가 생겨 좋겠수."
빈정 거리는 말투다. "그래요. 일 거리예요. 당분간이지만 말이요.
"왜 오래 하지 않고요." "오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저 녀석이 살아있는 물건이라면 연구할 사람
에게 양도해야지요. 알겠어요?" 부인은 아무 얘기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전에 남편이 무얼 만든다고 집에서 야단법석을 떨던 일이 몇 번 있었기에 이 번에도 부산을 떨지 않을까 하고 지레짐작하고 물었던 것이다.
당분간이란 말에 조금 누그러졌다. 이제 그 나이에 뭘 한다고 하는 것이 걱정이 되는 터였다. 남편보
다 나이가 적지만 칠십이 훨씬 넘어선 지금 말로 다투기도 힘에 겨운 현실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튿날 만성 씨는 눈을 뜨는 즉시 베란다로 갔다. 유리병은 이상 없이 둔 곳에 있었고 건드리지
않고 내부를 보니 이 녀석은 아직 꼼짝하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