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석탱이 단역이야
갓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이다. 졸리면 울고, 배고파도 운다. 듣는 사람이야 어쨌건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금 자라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도 여전하다. 숨바꼭질을 할 때 내가 눈을 가리면 남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타고나기를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났지만, 사회성도 함께 타고난 덕에 인간은 점점 자기 중심성을 뒤로 숨기게 된다.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있구나, 저 사람에게는 저 사람만의 무한한 세계가 있겠구나 배우는 것이다.
나는 이 자기 중심성을 잘 숨긴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라는 자기중심적 문구는 전국민 자존감 높이기 대작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슬로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사는 건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친구를 사귀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나와 놀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포지셔닝하는 순간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네가 뭔데 나에게! 라는 이상한 리액션이 나갈 수도 있겠다. 대학이 나를 떨어트릴 수도 있다. 이때도 세상의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더 큰 좌절이 찾아온다. 자기 중심성을 일찍 버리지 못한다면 입시뿐만 아닌 삶 속 모든 성취에서, 친구뿐만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난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또, 자기 중심성이 크면 사회에 어우러지기 어렵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5분만 대화해도 티가 난다. 끊임없이 대화 속에서 자신을 보여주려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자신이 할 얘기가 생각나면 두 눈이 빛난다. 그럴 때면 상대의 얘기를 툭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었는데! 내가.....” 나에게도 세계가 있듯이 상대에게도 세계가 있음을 모르면 나도 모르게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일찍이 인정하고 나면 삶이 편해진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내 인생의 방해꾼처럼 보이지 않는다. 쟨 글쿠나. 쟤의 세계에선 내 스타일이 별로인가 보지. 그럴 수도 있지. 취업에서 미끄러져도 빨리 떨치고 일어날 수 있다. 저 기업은 다른 사람을 원하나 보다.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들을 수도 있고 나 자신을 타인에게 뽐내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성취에 실패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고 쩌어기 구석에 지나가는 단역이기에 이런 실패 따위는, 작은 실수 따위는 큰일이 아니다. 나는 쪼무래기니까 실패해도 된다. 세상의 단역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좀 더 마음 편하게 사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