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을 쓰고(정확히 말하면 써두고. 발행까지) 한 달이 걸렀다. 연제일을 하루 앞두고 받는 알람이 있다.
[D-1] 내일은 브런치북 '비자발적 휴직 : 생각이 걷는 길' 연재일 입니다. 아직 글을 쓰지 않았다면, 독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서둘러 주세요!
답변 : 죄송합니다..... 저는 약속을 자주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10번쯤 어겼을까요.
[글 발행 안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답변 : 그 말을 사실입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하지 않는 버릇을 들이니 도통 다시 시작되지 않아요. 몇 번의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오늘 역시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기려고 했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하고 싶지 않다고 쓰기 위해 다시 키보드를 잡았답니다.
3주 차 금요일부터 그 뒷이야기를 기억을 더듬어 떠오른 문장을 기록해 본다. 한 편의 글이 되길 기대하며!
나는 기억한다. 4월 18일 저녁, 포항 철길숲에서 밤 11시에 가로등 아래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던 꽃밭을. 꽃이 예쁘다는 K의 말에, 불쌍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가로등 아래 심어진 꽃들은 새벽즈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가로등이 꺼지면 비로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현 상황에 대해 꽃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다.
나는 기억한다. 4월 19일 11시 선물로 가득 찬 글쓰기 워크숍의 책상을. ㅁㅇ님의 엽서와 스티커, 작가님의 책과 유리컵과 빵 선물. 빵 중에 크루아상.... 맞다.. 크루아상! 워크숍이 진행되는 2달 중 마지막 회차는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작은 선물이 오가곤 했다. 나는 아직 부끄럽고 까먹기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해 줄지 어떨지 모르고 조심스러워서 뭘 나눈 적이 없다.(핑계 아니지? 응. 아니야) 하트컵은 싱크대위 창가를 스티커와 책들은 서재의 책상을 지키고 있다.
나는 기억한다. 4월 19일 스키드안경원에서의 저녁을. 우리는 결혼식까지 1주일 남겨두고 신혼여행지를 일본으로 방금 정했다. 계획 없는 부부를 위해 안경원에 오고 가는 지인들은 저마다 오사카의 맛집을 하나둘씩 꺼낸 준다. K와 나는 지인들을 붙잡아두고 그들의 일본 맛집 리스트를 훔쳤다.
나는 기억한다. 4월 20일 K와 그의 부모님과 함께 예식장을 미리 방문했다. 주 방문목적은 예식뷔페를 체험하러 간 것이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호텔 내부의 서점이다. 그것도 아주 크고 쾌적한! 책이 저마다 투명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표지만 보고 골라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경주에서 대형 서점(?)은 처음이라 잔뜩 신이 났다. K는 나에게 두 권의 책을 권했고 (아마도 그는 나를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말센스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김소연의 '어금니 깨물기'로 답했다.
나는 기억한다. 4월 20일의 불국사를. 벚꽃이 떨어질 즈음, 흰색과 초록연잎이 어우러질 즈음에 불국사 겹벚꽃이 절정을 이룬다. 갈색 나뭇가지에 풍성하게 맺힌 겹벚꽃. 불국사에 가장 사람들이 많은 시기다. 흐드러지게 핀 겹겹의 벚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풍성해진다. 이날은 날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사람이 많진 않았다.
나는 기억한다. 4월 20일의 노란 고무신을. 불국사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보게 된 고무신. 번식력이 좋은 다육이가 노란 고무신에 자리 잡았다.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자 사장님이 한쪽에 다육이는 볼품없을 거라 말하셨다. 카페 내부에 정말 식물들이 많았는데 직접 가꾸는 이는 모든 식물의 상태를 꽤고 있는 법이었다. 사장님의 관심을 받고 있는 녀석이라 언젠가 다시 생기를 되찾을 것만 같다. 따뜻하다.
나는 기억한다. 4월 20일 오후의 도자기를. 집에 가는 길 우연히 본 현수막을 따라 도자기 축제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참여형 행사는 종료되었지만, 다양한 도자기를 구경하기에는 충분했다. 미술관에 들어온 느낌이었고 도자기와 축제의 조명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도자기들이 틀에 넣어 찍은 제품이 아니면 제품도 그림자도 같은 것이 없는 법이었다. 어우러지지만 단 하나도 같지 않은 도자기를 보면서 인간군상을 떠올렸다. 도자기와 인간군상. 부지런 떨게 되면 한 편의 에세이로 만들어 봐야지.
나는 기억한다. 4월 20일 스타벅스 경주 터미널점의 책상을. K에게 '영원히 나는 꿈 -나란' 도서를 건네며 읽게 하고, 시아버님이 사주신 책 2권을 꺼냈다. 책을 사주시겠다는 아버님말에 입꼬리가 주체되지 않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그 순간부터 또 한 분의 아버지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아무튼, 달리기'는 늘 가지고 다니며, '수학이~' (제목도 기억 안 남) 저 책은 아직 비닐 속에 들어있다. 독서가 서툰 K가 생각보다 책 읽기에 몰두해 주어서 행복함을 가득 느꼈던 날이다.
K : 섹시함의 한계치를 초과한 사람에 왜 밑줄을 그어놨어?
나 : 몰라,, 새벽이라서 그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를 그런 사람이라고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하는 거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