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 책
언젠가 스물 초반에 내가 서울 어느 경찰서에 잡혀있을 때 집에 연락이 가자마자 체감상 한 시간 반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아부지는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그레이스를 몰고 쏜살같이 오셔서 내 뺨따귀를 후려갈기셨었지.
중고생 때 말썽 비슷한 걸 피울 때도 아부지에게 뺨을 맞은 적은 없다.
"가자! 제가 데려가서 잘 교육시키겠습니다! 가자!"
"저기, 아버님 지금 얘 못 데려갑니다."
그 단호한 목소리에 아부지가 나를 잡아끌었던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형사과 책상 컴퓨터 앞에 다시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을 때 아부지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는 형사의 어깨에 겹쳐진 아부지의 허방 짚던 팔다리와 어쩔 줄 몰라 길 잃은 무력한 눈과 입술을 보았다.
예의와 범절의 세계에서 법과 교정의 세계로 가는 균열의 틈에서 농사짓고 식당일 하시던 아버지는, 그래도 어릴 적엔 남의 집 서울살이 해보셨다고 세상 돌아가는 일 촌사람들 보다는 더 많이 아시던 아버지는, 먼 거리를 길잡이 없이 놀랍도록 빨리 도착했다는 내 마음속의 기록을 제외하고는 벌어진 일에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방음 유리벽의 무력감 앞에 섰던 것이다.
서울 어디 내로라는 집 누구누구의 연줄로 경찰서에 연락을 좀 넣어 그 철 모르고 어버버 하다가 잡혀온 놈 구류 며칠 시키고 집에 보내주소 할 만한 사람은 이 대한민국에 단 한 사람이 없었다.
유치장 마룻바닥에서 보리밥에 단무지를 받아먹으면서 못 채운 학점과 맘에 두었던 여학생과 학생회실을 채우던 매직, 마카, 스프레이 냄새와 청춘의 靑은 청테이프의 청이라던 꿈결처럼 아득한 멋진 말들이 이틀 전 아디다스 흰색 라운드티에 흩어진 핏방울들처럼 검게 변해가며 흑백으로 재 인화되는 동안 나는 떠올렸다.
고등학교 이학년 초, 나는 태백산맥이라는 장편 소설을 읽고 있었다.
해방부터 동족상잔의 전쟁까지의 시간적 배경에서 지리산 인근의 전라도 지역을 공간의 주축으로 삼고 해방 후의 사건들과 빨치산의 항전을 그린 이 소설은, 휴전선과 가까워 북풍이 몰아치면 그 바람은 멀리멀리 피하려는 중부지방의 사람들에게는 빨치산이나 빨갱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곧바로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은 국가보안법의 저촉을 받는다는 얘기도 돌았지만 공공연히 서점에서 팔리고 있었으니 그때는 반공과 민주가 반대말처럼 섞이고 군부독재와 문민정부가 어깨동무를 할 때였다. 그 시절 신문과 뉴스에서는 문민정부라는 표현이 끊임없이 나왔다. 문민정부는 형식적으로 군부통치의 시절을 벗어났다는 자유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벼려진 낫 앞에 제 몸을 베어 결국은 그 낫을 무디게 만든 눈물겨운 희생과 싸움의 역사에서 태어난 말이었지만 나는 그걸 잘 몰랐다.
나의 봄은 대학 시절에 있지 않았고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다. 학생의 자율을 나름 보장해 주던 가톨릭 미션스쿨, 우리 학교는 종교계에서 이른바 박정희에 맞서는 '양심선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어떤 주교님이 설립한 학교였으며 그 영향으로 개교 소식을 듣고 몰려온 우국지사들이 개국 공신 선생님으로 다수 포진해 계셨다. 장발까지는 아니라도 제법 긴 머리도 용인되었으며 교복은 있었으되 입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구매해서 입었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되었다. 영월, 평창, 정선, 횡성등의 지역에서 우리 학교로 진학하여 하숙집 밥을 먹고 또는 스스로 불 때서 밥 해 먹고 다니는 친구들이 제법 많았다.
그 시절, 토요일 오전까지도 수업이 있었던 시절에 어떻게 짬을 내었는지 주말엔 다른 여학교의 학생들과 미팅에 소개팅이 심심찮게 잡혔고 처음 들어가 보는 카페라는 곳에서 쓴 커피도 시켜 먹고 눈 한 번 끔뻑하면 들여보내주는 호프집에서 500cc를 앞에 놓고 어질어질 나른한 발 밑을 신기해하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시장 뒷골목 어디쯤에서 소주도 한두 잔 홀짝거려 보았던 것이다. 자율활동을 장려하던 학교 분위기로 인해 운동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매일 저녁마다 모여서 도복 입고 띠 매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선배님 보면 깍듯이 인사하고 책잡히면 빠따도 맞고 의리와 객기가 마치 자부심으로 변해가는 양, 소속감 속의 소속감으로 예쁘게도 익어갔다.
거기에 더해서 알고 보니 아침조회 시간에 스피커 전선 깔고 마이크 설치하는 일이 거의 전부였지만 괜히 인기가 좋았던 방송부에도 입성하여 가끔 마이크도 잡아보았다. 자연스레 시내 각각의 남녀 고등학교 방송부 구성원들의 연합 모임의 멤버가 되었다.
마음이 들뜨고 바빴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이 가고 이 학년을 맞이하던 때로 기억한다.
어느 한 날 동네 형의 집에 놀러 갔다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철 지난 만화책을 보다가 하얀색 장정본의 헤세가 꽂혀있던 그 책장에 겉보기에도 거무튀튀하고 무거운, 고딕 한자체로 된 太白山脈이 일권부터 십 권까지 나란히 꽂혀있는 걸 보았다.
"형 태백산맥 읽어봤어?"
"아니, 안 읽었어. 우리 누나 거야."
동네형네 누나, 도내 국립대학에 다니던 새침한 누나.
그 방에서 어쩌다가 그 책을 펼치게 되었을까.
삼국지 열 권, 영웅문 열여덟 권을 다 읽고 나니 분량에 겁을 먹던 시절은 갔다고 생각했나 보다.
태백산맥.
첫 권을 손에 들고 어쩐 일인지 그 방에서 혼자 수십 페이지를 넘기면서 몇 챕터를 읽었을까. 서너 권을 빌려 옆구리에 끼고 집에 오던 그 밤길이 생각난다.
일제가 패망하고 미 군정이 입성하고 삼팔선이 그어지고 남한과 북한 정부가 따로따로 수립되고 어느 새벽 이북이 이남으로 탱크를 몰고 내려오기까지. 그리고 교전, 어느 편이 어느 편을 향한 항쟁과 비정규군 파르티잔. 누가 빨갱이가 되고 누가 빨치산이 되는가.
파르티잔이 있기 전에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소작농이 있었다. 간신히 목숨을 이어갈 만큼의 나락을 얻기 위해 손발이 닳도록 일하지만 지주와 마름에게 착취당하는, 보릿고개를 넘어가다 정말로 숨이 넘어가던 다수의 농민들의 귀에 들려온 토지 무상 분배의 구호는 그 무엇보다 달콤하였을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이즘의 이상이 있었고 그 구호는 선명하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의 대대적인 실패를 알린 것은 나중의 일이고 이차 대전 직후에는 아직 어떤 주의가 더욱 우월한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욕망은 발전을 추동하는 원료이자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에너지로써 그것은 안으로 파고들어 사회주의는 왜곡하였고 자본주의에는 기름을 부었으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제를 잘못 설정한, 이상을 기반한 실험이 실패한 현실인 것이다.
일제가 밀려가고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던 민초들 앞에 펼쳐진 것은 양자택일의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었고 흐지부지 되어버린 반민특위의 실패 뒤로 친일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군대고 경찰이고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그때의 그 방식을 능가하는 잔혹함으로 민간인들을 죽여갈 때 새로움을 꿈꿨던 사람들은 누군가의 손가락 하나가 그를 가리키면 공산주의자, 부역자로 몰려 죽창에 몽둥이에 당장 죽어 자빠지는 현실을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산으로 산으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휴일엔 등산화를 신고 적절한 보온을 위한 여벌 옷을 하나 넣고 물이랑 사탕 초콜릿 같은 주전부리도 몇 개, 그리고 스틱과 소형 손전등 하나. 이렇게 배낭을 채우고 끈을 조이고 등산길을 나서본다.
봄이면 연둣빛 새 순의 보드라움에 마음을 주고 여름엔 빽빽하게 울창한 초록에 머물다 가을엔 노랗고 빨간 단풍에, 겨울엔 가끔씩 펼친 설산의 아름다움에 도취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인적이 드문 어느 곳, 희미한 길의 흔적을 보거나 도토리 밤등이 수북이 떨어졌는데 주워가는 이 없다거나 바람이 자는 어느 바위 아래 햇빛이 따시게 머물면 나는 가끔.
'이런 산 어느 한 모퉁이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못 이겨 어느 병사는 죽어갔고 그가 죽을 때는 따스한 불빛이 창호지에 배어 나오는 고향집 아랫목과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누이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한 고개를 넘고 왼쪽 비탈을 돌아들면 사람 네댓이 들어갈 만한 바위틈이 하나 있고 나무를 꺾고 헤치면서 직하강하면 여름에는 사십 분이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물을 길어올 수 있겠다.'
'산의 우측면 양지쪽에 비트를 판다면 어디 어디쯤에 경계를 세우지 않았을까? 이 정도면 일조량이 길어 겨울밤을 버티는데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이 산의 오른편은 행정구역상 어느 군, 다른 쪽의 한 편은 어느 읍과 붙고, 나머지는 또 다른 어느 군에 속하게 되는구나.'
가끔 이런 식의 생각에 잠기는 것은 절절히 묘사된 산 생활의 참담함과 지리산을 손바닥처럼 펼쳐놓은 '태백산맥'의 영향이다.
산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끼니를 잇고 야음을 틈타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해온다. 남편과 아들을 산으로 보내놓고 그 죄로 끽소리 못하고 숨만 쉬며 살아가는 아낙네들의 설움. 그런 약자를 보면 가만 놔두지 못하는 칼자루를 쥔 자들이 발동하는 인간의 약탈과 폭력의 본성이 세세히 묘사된다.
아! 우리나라에 이런 일들이 지나간 것인가. 열여덟의 마음속엔 지금껏 좁은 시야로 살아왔다는 자각과 추상적인 민족애가 자라났다.
조선이 기울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삼킬 때 우리는 차례로 어떤 것들을 잃어가며 나라를 바쳤는지, 그래서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의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임시정부가 어디로 옮겨 다녔는 지와 광복군의 창설과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의 저항을 배웠다. 한민족의 전선이 명확하던 시절, 민족의 주적은 일본의 제국주의였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부터 육이오 전쟁까지의 기록은 현저히 짧은 몇 마디로 단신처리 된듯한 의아함이 늘 남아있었던 듯하다. 여기부터가 축약된 지점이며 진실을 가리고 싶은 사람들이 잘라내고 덮다 보니 교과서에 쓸 말이 적었나 보다. 해방공간에서의 어지러운 몇 해와 그 시기를 주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한반도의 슬픈 역사와 식민지 잔재와 모순이 이어져 내려오게 된 계기와 전쟁 이후의 정치적 대립 양상에 대하여 나는 이 책을 통해 대략의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서태지가 지나가고 아이돌이 등장하며 오렌지족은 강남에서 이쁜 아가씨들을 스포츠카에 태우는데 너희들도 엑스세대라면서 뭐가 부족해서 아직도 지나간 옛 선동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뭘 그리 심각하냐고 남걱정하지 말고 니 걱정이나 하라는 말들 모두 모두 죄다 잘 알아들었다.
자, 그럼 차가운 쇠파이프를 말아 쥐고 최루탄 허옇게 맞아가면서 이쪽 길바닥 저쪽 마당에서 잠자면서 참새떼라도 머리 위로 날면 마치 돌멩이들이 날아드는 듯 움찔움찔 움츠리면서 너는 무엇을 위해서 그 전선의 전위에 섰느냐. 소영웅주의라 말하기엔 아부지 엄마가 바라는 조용하고 내실 있는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누구 앞에서 그리 우쭐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청춘드라마와 시트콤의 등장인물들처럼 재기 발랄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다. 동아리와 전공과 교양수업과 도서관과 공부다운 공부와 연애. 이것이 내가 대학에 원한 대부분의 모습이었다. 다만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평생에 한 번은 출가를 해야 한다는 어떤 불교 국가 국민의 의무처럼 분단된 나라에서 나고 자라 젊은이가 되었다면 한 손 한 발이라도 거기서 비롯된 잘못과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실천적인 힘을 보태는 것이 맞지 않나. 나 하나만 생각하고 잘 살면 된다니 한 켠 외면하기 힘든 어느정도의 부채감.
그래서 이 시위의 현장을 내가 선택하였고 거기서는 주어진 역할들이 있고 그중에서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내가 맡았던 것. 돌아보면 성향의 문제였다.
사수대.
목숨 걸고 지킬 무엇이 있기는 있었던가.
'4.3은 해결되었나. 5.18은 어떤가. 손댈 수 없는 주한 미군의 범죄들은?' 옅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그러나 그 거리는 폭력과, 다시 폭력만이 존재하는 적나라한 본능의 향연.
이십 대의 시위대와 이십 대의 전경들이 모여 서로가 명분이라는 것을 세워준 무언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
페퍼포그가 쉴 새 없이 최루탄을 쏴대고 직격탄과 지랄탄들이 쏟아진다. 방패로 아스팔트를 찍어대는 소리가 정연한 군기에서 오는 두려움을 준다. 곧이어 화염병의 불꽃이 난무하고 쇠파이프와 방패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파이프 끝에 걸리는 방패 상단 모서리와의 타격감. 손아귀에 오는 진동들.
분노와 공포의 눈빛들이 부딪치는 곳, 백골단의 딴딴하고 날렵한 탄력이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노려보던 곳. 기세와 기세가 충돌하면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어느 한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페퍼포그가 후퇴하고 전경들이 흩어지던 그 도로 위. 쇠파이프를 긁으면 아스팔트에서 튀던 불꽃.
역전되는 시점,
덮쳐오는 병력들과 뒤돌아 뛰던 나.
나는 그때 그곳 유치장 벽에 기대어 문민정부가 출범하여 이제는 대의명분도 퇴색해 가는 시위 문화의 끄트머리에서도 지금은 그래서 뭐가 얼마만큼 해결된 것이냐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밀어온 것은 내 의지에 바탕한 것이니 어디에 휩쓸려서 걔가 그랬다더라는 말을 듣고싶지는 않았다. 복기해 보면 밀려오는 아쉬움과 후회를 자존심으로 꾹꾹 누르면서 자꾸만 미끄러져도 결연했던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감정을 이입해보려 해보고 또 해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누군가 책을 하나 잘못 읽은 바람에 애가 이렇게 되었다고 얘기한다면 그 책은 다름 아닌 '태백산맥'이었다고, 지금은 다수 지식인의 입에 오르내리며 명성이 유순하여진 바로 그 책이었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그때 스물한 살의 청년은 그 책엔 빨갱이는 없었고 동포를 빨갱이라고 부른 슬픈 역사가 있을 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고 경찰서 반지하 반원형의 한 칸에 들어앉아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쇠창살도 만져가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