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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랑 Dec 04. 2024

슬기로운 기초 영문법 생활

어쩌다 보니 영포자에서 영어 학습자로 - 1

딩딩딩 동~딩딩 동~딩 딩딩딩딩 동동동


잠자고 있던 피아노가 놀랐겠어요. 거실에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는 피아노가 그 존재의 이유를 잊은 지 오래였는데 요즘 날마다 이름값을 하느라 바쁩니다. 딩딩딩 동동동 딩딩 동동. 요즘 푹 빠져있는 (시작은 보이밴드였을) 데이 식스의 노래래요.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소리가 연일, 수시로 납니다.  악보라도 구해주면 좀 더 빨리 노래처럼 들릴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데는 3초. 요즘 한창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는 그녀'거든요. 알아서 잘하겠죠, 뭐. 이왕 깨운 피아노에게 자주 가주고, 일어난 피아노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놀아주는 것도 좋겠다 싶네요.


꼼꼼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이이니 챙겨줘야 할 것이 있겠거니 싶은 마음에 "이거 했지, 저거는?" 물어봅니다. 덜렁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꼼꼼하지도 못한 엄마랑 살아내는 아이도 '엄마 이거는? 저거는?' 하며 물어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얼굴 붉힐 만한 대형 사고 없이 잘 넘어가고 있어요. 실수는 1초 빠른 '미안해'로 덮어버리고 케이크 한 조각 챙겨 수다로 털어냅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고, 잘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않으려 애를 써봅니다. 이게 애를 써야 "라떼는 말이야~"로 넘어가지 않게 되니 한 번씩 밀려오는 유혹의 소나타는 꾹 눌러야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 짚기는 절대 금물이라고 하니, 모르겠으면 부끄러워 말고 '모른다'라고 물어보고 알려주면 귀 기울이며 그렇게 서로를 봐주면서 막내의 사춘기와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중학교 1-2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 방학부터 미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다름 아닌 시!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예고되어 있었거든요.


저와 남편은 '학원 혹은 과외' , 아이와 아이의 오빠들은 '스스로 공부해서 시험 준비 해보기'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시험이고(고맙게도!) 그 시험을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내야 학원을 가더라도 떠밀려하는 공부가 아닌 그야말로 '자기 주도적 학습'이 된다는 아이들의 말에 설득되기로 합니다. 그렇게 오빠들의 지지를 등에 업으니 저의 모든 질문은 '알아서 할게'가 되어 돌아옵니다.


사실 내심 아이가 내어준 용기가 고맙고 대견합니다. 저야말로 욕심은 가득한 마음만 하버드의 공부 벌레여서 미루고 미루다 마감 일 초 전에 간신히 마침표를 찍는 게으름쟁이이거든요. 그러니 아이들 각자의 머릿속 계산기는 모두 다른 속셈으로 두들겨졌더라도 결론이 ‘안 하겠다'가 아닌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불안합니다. 정말 그 힘든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낼 수 있을까요? 5년 후 수능을 치르고 ‘5년 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내는 시간 동안의 값진 경험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어요' 이러면서 인터뷰하게 될지도 모르죠. 김칫국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며 말로 씨를 뿌려봅니다. 오늘도 저를 토닥토닥 다독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데 저는 저의 사춘기까지 네 번째의 사춘기와 함께 하는데도 힘이 없네요. 아이가 방문을 닫고 공부하겠다며 동의를 구하듯이 통보를 해오는데도 딴짓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다니 거절이 거절당한 느낌이고요. 온전히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의 닫힌 방문을 째려보아도 제 두 눈에 장착된 레이저에는 슈퍼맨의 투시력이 없으니 그 방안의 일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해야 합니다. 손 쓰지 않기로,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으니 어쩌다 보이는 것에도, 들리는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칭찬해주고 안아주기만 할 수 있어요. 시집살이보다 더 한 사춘기살이입니다. 저 이러다 사리가 한가득 나올까 싶은데... 아이는 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네요. 이 지긋지긋한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짝사랑이라니...


흥! 쳇! 뿡! 짝사랑의 애닮은 애원이 원천 차단당했으니 저도 제 나름대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려 애를 써봅니다. 에센셜 오일 뚜껑을 열어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Love myself. 갱년기하고 친하게 지내기도 해 보고 치매에 걸린 아빠에게 좋은 유향 오일과 아빠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활활 타오르려고 하는 엄마의 불덩이를 진정시켜 줄 장미 오일의 향도 챙기면서 시간을 바쁘게 보냅니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sns 그중 젤

어려운 인스타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서 무심코 구경하며 우연히 접한 "어려운 레벨의 영어 속으로 밀어 넣어 영포자로 만드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엄마들이 영어 공부를 해야만 한다. 반드시 반드시!!!"라는 문구에 홀려 기초 영문법 수업을 등록하기로 합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이요. 그렇게 저의 슬기로운 기초 영문법 수업은 무더운 7월 여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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