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실패의 맛, 그리고 지워지는 결승점
Cambio(깜비오)
선수교체
고막을 찢을 듯한 휘슬소리와 함께 장신의 감독이 커다란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연신 깜비오를 외쳐댔다. 잠시 후 경기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서성대던 아이가 터덜터덜 벤치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아니 어떻게 벌써 교체를 시킬 수가 있어요?"
"누리 들어간 지 3분도 안되지 않았나요?"
옆에 앉아있던 한국 엄마들이 흥분하는 사이 나는 고개만이라도 쏙 넣을 수 있는 쥐구멍을 찾았다.
'사실 1분도 뛰지 않았어요.' 목구멍에 걸려있던 말은 누가 볼세라 꿀꺽 삼켰다.
체면치레에 실패하고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익숙하게 벤치를 지키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한 달이 넘도록 아이를 설득하고서 겨우 등록했던 농구수업에서 아이는 다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씁쓸하고 아린 맛, 하지만 다시 돌아올 익숙한 짠맛
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몸으로 하는 것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해내는 놀라운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두드려 본 돌다리도 쿨하게 패스하더니 놀이터마저도 마음속 안전도장을 꾹 찍은 곳만 가야 했던 아이.
유치원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설치한 물놀이장에서 혼자 미끄럼틀을 타지 않겠다고 엉덩이를 빼는 바람에 선생님께 전화를 받아야 했고, 놀이공원을 가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기구 타기를 거부하다 보니 서로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이 되어 돌아오기를 여러 번.
그뿐인가.
겨울방학 때 등록한 1대 1 스키강습에서는 역대급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꾸역꾸역 설움을 삼켜야 했고, 큰맘 먹고 갔던 하얏트 호텔 아이스링크장에서는 보조기를 잡고 종일 쟁기질만 해댔다. 아이스링크가 아니라 밭이었다면 풍작을 하고도 남았을 바지런함이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축구라도 하는 날이면 심판을 자처하고 점수 매기기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지켜보는 엄마의 속은 늘 쥐불놀이처럼 타들어갔다.
하지만 풀배터리 검사 후 나는 그러한 아이의 특성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운동 지능이 경계선에 있다 보니 속도에 대한 반응이 느려 공의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웠고, 불안이 높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놀이기구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달리는 자세부터 엉거주춤했던 아이에게 운동이란 바닥인 운동 신경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었고, 도전하고 싶지 않은 약점이었기에 늘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운동은 출발선은 정해져 있지만, 결승점은 내가 긋기 나름이다.
눈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지우고 다시 더 멀리에 그어 보는 것.
스스로의 한계점을 하나씩 지워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성장해 있는 것이 바로 운동이고, 그 힘으로 삶의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운동 젬병이에게도 허들을 넘을 기회를 계속 주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한국을 떠나고 나니 학원으로 빼곡히 채워졌던 아이의 오후 시간이 듬성듬성해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회인가.
타고난 유전자를 탓하기보다 살아내는 힘을 가르치고 싶었기에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절실했다.
하루 이틀이면 배운다는 두 발 자전거 타기.
부모 둘 중 하나라도 충분한 인내심과 지도력을 갖추고 있다면 운동 젬병이에게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럴 깜냥이 되지 못했고, 결국 특수체육 선생님께 방학특강으로 두 발 자전거 타기를 배우기로 했다.
이른 아침, 근처 공원에서 이론부터 실기까지 꼼꼼하게 지도받았던 아이는 3일째 되던 날부터 누구의 도움 없이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5일째 되던 날은 공원을 누비며 제법 스피드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자전거 타기만큼은 즐기는 것을 보니 직접 가르치기 힘들다면 돈을 주고라도 자전거 배우기를 추천한다.(내가 아직 두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것은 비밀이다.)
단체 운동의 장점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플 만큼 넘친다.
하지만 모자란 실력임에도 동료들의 진한 응원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눈물겨운 성공담이 내 아이의 것이 아님을 안다.
경기에서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우러져야 한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여러 개의 포지션이 나누어지고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 전략까지 간파해야 승리로 갈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경우는 경기의 흐름을 읽는 힘이 약하고, 공 하나로 여러 명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단체 운동에서는 가진 약점이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엄마의 간절한 설득으로 시작한 농구 수업이었지만 아이는 팀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경기에서 각 팀 주장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졌고, 이는 곧 놀림으로 이어졌다.
친구들의 사과를 받고서야 사건이 일단락되었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농구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보며 한 뼘 성장한 것이 흐뭇했다.
아이의 가느다란 의지는 농구 강국인 미국으로 건너오며 한순간에 싹둑 잘려 버렸다.
축구, 태권도, 농구까지 굴비 엮듯이 줄줄이 참패를 맛보았지만, 유일하게 꾸준히 해왔던 운동이 수영이다.
팀 스포츠에 어우러지기를 바랐으나 꿈은 한쪽에 고이 접어두고 나는 아이의 수영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학교 대표 스포츠 팀이 있고, 클럽에서 하는 스포츠 팀이 있다. 대부분 트라이아웃(선발전)으로 선수를 뽑게 되는데, 아이는 모두 탈락하고 수영 prep(정식 클럽팀 입단 전 예비팀) 팀에 겨우 들어가게 되었다.
자세부터 하나씩 잡아주는 한국과는 달리 단체수업은 선생님의 노련한 지시로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한 시간에서 두 시간가량을 훈련에 집중한다. 각종 영법을 교대로 하거나, 팔을 사용하지 않고 잠영을 하거나 잠수 훈련을 하는 등 쉴 새 없는 연습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수영 가기 싫다는 말을 주제곡으로 쓸 만큼 투덜대던 아이의 노래가 점차 간주음으로 바뀌더니 어느덧 코치들의 교육방식을 비교할 만큼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다.
다이빙 연습을 처음 하던 날, 다이빙대에 올라 사시나무 떨듯 다리를 오징어처럼 말고 있던 아이가 선생님의 구령 소리와 함께 입수를 했다. 발부터 폴짝.
단전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아이에게는 입에 침을 잔뜩 바른 채 해냈다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 시간에 어설프지만 제대로 된 자세로 입수를 했다. 나는 옆에 앉아 있던 미국 엄마들이 보든 말든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아이의 성장을 응원했다.
그리고 겨울 스포츠로 신청한 피클볼을 매주 하면서 아이는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재미있다고 웃음 짓는 아이를 보며, 운동 신경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마음껏 재단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엄마, 나 알체리에서 이겼어.
뭐? 알제리 애랑 싸웠어?
하교하자마자 잔뜩 흥분한 아이가 던진 말에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익숙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며,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아이에게 물었다.
"왜 싸운 거야?"
아이는 답답한 듯 내게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알제리가 아니라 알체리(Archery), 양궁.
나 체육시간에 양궁에서 9점을 쐈어.
같이 쐈던 친구한테 이겼단 말이야."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 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행이다. 정말 솥뚜껑이어서.
새로운 운동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재미를 느끼고 있는 아이를 보니 결승점을 지울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처음 그었던 결승점과 나중에 긋게 될 결승점의 거리만큼 성장해 있을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걸 보니 이제 그만 운동 젬병이를 마음속에서 놓아주어도 될 것 같다.
축하해, 너의 세상에 튼튼한 대들보를 세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