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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은선씨 Dec 31. 2024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겠죠


내일 발행해야지 하고 쓰던 글이 있었다. 송년 시즌이니 1년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들 둘 욕 실컷 해보겠다는 넋두리의 글이었다.

오늘은-말 안 듣는 아들 셋을 축구장으로 내쫓은-느긋하고 한가롭기까지 한 일요일 오전이었다. 뜨끈하게 내린 커피를 홀짝거리며 아들 욕을 한 바가지나 적어놓은 글을 마무리하려 노트북을 펼친 유쾌한 은선씨는.

더 이상 유쾌할 수가 없었다.


 태국발 비행 편이라고 했다. 태국. 내년 여름방학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 살기를 하려고 한참을 알아보고 있던 나라였다. 나와 나의 아이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나의 친구들이 탔을지도 모를 비행기.

살짝 감은 눈에 내가 그 자리 21B에 앉아있다. 정체 모를 폭발음, 흔들리는 기체, 매캐한 연기,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 파고든 손톱에 하얗게 질린 주먹. 등골이 서늘해진 나는 두려움에 얼른 눈을 떴다. 더 이상의 상상은 할 수 조차 없다.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한탄의 글을 쓰려했던 내가 얼마나 감사한 글을 쓰려했던 사람인지.

하지만 이런 참담한 불행 속에서 나의 무탈한 안위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는 또 어디까지 이기적인 사람인지.

여러 감정이 오간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글로 누군가 위로받을 수 있기를, 그로 인해 나 또한 구제받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어떤 글로 위로와 애도를 풀어내야 하는지 모르며 또는 나의 글로 누군가 상처받지는 않을까란 두려움으로 결국 글을 덮어버릴 때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글을 잘 쓸 줄 모른다는 이유 뒤 숨어 이 불행에 대한 애도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앞으로 어떠한 글도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느 작가님의 글을 보았다. 하늘나라에 계신 시아버님께 오늘 같은 곳으로 간 분들을 잘 부탁한다라는 글이었다. 그분의 글을 빌어 나도 부탁드리려 한다.



 아버지. 잘 계시죠. 저희가 헤어진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좋아하시는 골프 실컷 치시고 계신가요? 돈 많이 드는 운동 좋아한다며 어머니와 제가 눈치를 그리 드렸는데 이렇게 일찍 떠나실줄 알았더라면 어머니 장단에 얹히지 말걸. 손자들이 그곳에서는 홀인원 하셨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저번주 아버지 기일     간 건 알고 계시죠? 거기서 눈물 콧물 다 쏫아 얼굴이 말도 아니었는데 그거 보셨다면 섭섭합니다.

그나저나 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 어머니보다 제가 머리 감겨 주는 게 더 시원하다며 저 꼭 시키셨잖아요. 기억하시죠? 며느리가 시아버지 머리 팍팍 감겨드리는 거 요즘 시대에 흔한 아닙니다. 그러니 이번엔 아버지께서 부탁을 들어주셔야 것 같아요.

아버지랑 헤어진 그 추운 12월에 또 다른 분들이 가신다네요. 그런데 한 분이 아니고 여러분이래요. 거기에는 아버지 보다 형님도 계시고 아들, 딸 같은 분들도 계시고 아버지가 귀여워마지않던 손자들보다 더 어린 아기 천사들도 있다네요.  

아버지가 하늘나라 선배시니까 따뜻하게 보듬어주세요. 제가 부탁드리지 않아도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분이시니 어련히 안아주시겠지만요.

아버지. 보고 싶어요.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버지를 보내드렸음에도 작년 그 추운 날의 눈물이 조금도 덜 하지 않게 저의 가슴을 날카롭게 적시는데 지금 가시는 분들의 가족들은 준비가 안되셨어요. 어떡해야 할까요. 상상되지 않은 슬픔입니다.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따스히 안아주세요. 많이 무서웠지 토닥여주세요. 저희는 그 믿음으로 무릎에 힘 꽉 주고 내일 하루도 감사히 살아겠습니다.



2024.12.2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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