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버릇
습관과 버릇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보통 좋은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라고 하고 나쁜 행동이 반복되면 버릇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녀는 쉬는 시간이면 독서를 하는 습관이 있다. 누가 봐도 좋은 행동이면 우리는 습관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그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그녀는 말버릇이 고약하다.처럼 왠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질 때에는 버릇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둘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 습관은 "오랫동안 반복하여 몸에 익숙해진 행동이나 방식". 버릇은" ①몸에 밴 자잘한 행동 방식." "② 좋지 않은 행동이 반복되는 경우." 역시 뜻도 크게 다르지 않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습관과 버릇 모두 "신경망의 길이 뚫린 상태"라고 한다. 길이 훤하게 뚫려있으니 판단과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뚫린 길에 우선권이 것이다. 다만 그 길이 도움이 되는 길인지 아닌 길인지의 차이일 뿐.(하지현. 정신과의사. 저서 아무튼 명언에서 참고)
나는 그럼 어떨까? 나의 좋은 습관과 안 좋은 버릇은 무엇이 있을까?
아침에 뭉그적거리는 버릇이 있다. 알람을 맞춰 놓고 5분 만을 외친다. 꼭 5분 늦게 일어나서 5분만큼 허겁지겁하며 5분만큼 급하게 운전한다. 그 5분 때문에 지각을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5분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화장실에 갈 때면 꼭 핸드폰을 들고 간다. 방금 전 온 카톡 확인만 해야지 하고 들고 앉았다가 20분이고 30분이고 아이가 "엄마 어딨 어요" 잡으러 올 때까지 온라인 바다에서 낄낄대고 있다. 변비가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는데 똥꼬가 찢기는 치질 수술을 겪어봐야 버릇이 고쳐지려는 모양이다.
음주버릇은 또 어떠한가. 난 반주를 좋아한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남편과 마주 앉아 먹는 막걸리 한 잔은 은 꿀이다. 어떤 날은 이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어 부어라 마셔라가 일주일에 서너 번은 되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대신 남들이 오 괜찮은데 하는 습관도 있다. 눈뜨자마자 서재로 들어가 다이어리를 쓰는 것은 자랑할만한 습관이다. 그릭요구르트를 집에서 만들어 아침으로 꼭 먹는다. 책은 어디서든 볼 수 있게 항시 지참이며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는 글을 쓴다. 술을 먹으니 건강이 염려되어 아침 수영은 꼭 간다.(운동 메이트들에게 나의 음주는 비밀이다.) 같은 맥락으로 몸에 좋다는 약은 다 털어 넣고 있다. 비타민부터 시작해 유산균, 밀크씨슬, 오메가 3, 어쩌고 저쩌고 해서 아침에 먹는 약만 대여섯 가지는 되는 듯하다.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이럴 바에야 금주하겠다 싶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가 않는다. 좋은 습관을 이야기하려는데 결국 나쁜 버릇으로 돌아가니 좋은 습관을 만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습관이 된 행동은 관성에 의해 움직이므로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뇌는 효율성에 입각해 우선권을 부여하는 기관이다. 몸에 좋은 것, 예의 바른 것, 피해 주지 않는 것보다는 덜 힘든 것, 익숙한 것, 쉬운 것을 먼저 선택한다.(하지현. 정신과의사. 저서 아무튼 명언에서 참고) 나처럼 음주가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습관으로 형성되어 뇌신경망에 큰 길이 뚫려버리면 그 길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킬 만큼의 사건이 없지 않은 이상 습관을 끊어내기가 뇌과학적으로 어럽다는 것이다.
버릇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데 그럼 난 계속 이렇게 자책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항상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쁜 거 하나 먹었으면 좋은 것도 하나 먹어. 그래야 쌤쌤이야"
과자 한 봉지 먹고 싶으면 야채주스 한 컵은 마셔야 한다. 게임 한 시간 하고 싶으면 수학문제집 한 시간 풀어야 한다. 난 저녁으로 막걸리 한 잔과 탄수화물 안주를 먹기 위해 아침은 요구르트, 점심은 채식과 단백질 위주로 한다. 틈만 나면 핸드폰이 보는 것을 막기 위해 어디든 책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나쁜 것 하나 좋은 것 하나 맞트레이드가 되어야 한다. 계산은 맞아떨어져야 하니까.
"해야만 하는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진짜 지혜다." – 오스카 와일드
뚫려있는 길을 막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은 막는 것보다는 쉽다. 나쁜 버릇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만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은 할 만하다. 나는 집안일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싫어도 주부니까 습관처럼 해야 하는 일이다. 설거지를 할 때는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튼다. 빨래를 개킬 때는 미뤄두었던 친구와의 통화를 실컷 한다. 글을 쓸 때는 좋아하는 차와 간식거리를 잔뜩 들고 서재방으로 입장한다. 해야만 하는 습관을 만들 때는 꼭 좋아하는 일을 하나 붙여 그 일이 너무 힘들지 않게 도와준다.
몇 달 전 팔라테스 1년 수강권을 당근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10개월 정도 남았는데 횟수가 거의 10번도 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판매자가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데 두 손을 일찍 드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수강권이 이제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로. 고민이다. 어떤 재미있는 것을 붙여주어야 내가 레깅스를 입고 스튜디오로 갈 것인가.
"계속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결국 나를 만든다." – 마하트마 간디
좋은 습관들이 모여서 태도가 되고 그 태도가 나를 만든다. 독서 습관을 가지게 되니 좋은 글을 만나게 되고, 그 글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필사를 하고, 그 글처럼 좋은 글을 써보고 싶어서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다.
좋은 습관을 많이 가져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