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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딸깍이 Nov 18. 2024

거북이 세마리의 등산이야기

/  산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사람은 달라진다. /

펄펄 끓는 가마솥 같았던 여름, 

언제 그렇게 뜨거웠나 싶게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건 곧 겨울이 온다는 소리일터.

김장이다, 학원 숙제다, 친구들과 약속이다 등등등. 더 미룰 수 없다. 

가자, 가을산으로! 오랜만에 뭉친 여자 셋.


주말 아침, 우리 집 유일한 남자인 이기사님의 출근으로 기동성이 떨어져 가을 첫 산행을 어디로 할까 하다가, 104번 박기사님의 버스를 타고 올해 삼일절에 다녀왔던 제일 무난하고 쉬운 수통골-빈계산 코스를 찾았다.     

                        - 수통골-빈계산 코스 -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대략 왕복 4km, 높이 414m.

주차장~빈계산~성북동 삼거리~주차장     

   



산악인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천국의 계단이 거북이 세 마리를 맞이한다.

출발,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산행을 시작한다. 고행의 시간과 함께.

산을 오르기 전에는 ‘그래, 산에 가서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야지.’라고 하지만 막상 산행이 시작되면 정리하려던 생각들은 다 잊고, 아무 생각 없이 몇 발짝 내딛을 나의 길만 확인하게 된다. 온전히 내가 가야 할 안전한 길 찾기와 거친 호흡만 있을 뿐.     

우린 그렇게 자신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멍 때림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서로를 기다려주고, 헤어졌다, 만났다.

그리고 시원한 물과 힘을 줄 초코바를 나눠 먹고,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땀을 식혀 줄 적당한 바람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정상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준다. 같은 색 하나 없는 단풍들을 보며 얼마나 올랐을까. 어느 순간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기념 인증샷을 남긴 후 그제야 힘들어 오만상을 찌푸리던 첫째의 얼굴에도 경주 천년의 미소가 보이고, 10첩 반상 부럽지 않은, 허기진 우리의 배를 채워 줄 먹거리들-참치주먹밥, 컵라면, 과자, 커피, 핫초코, 귤-을 꺼내 놓는다.      


늘 먹던 라면도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먹으면 성취와 보람이라는 수프가 더해져 더더 맛이 난다.

우리에게 빠질 수 없는 ‘수다’라는 건더기 수프는 덤.

수다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하산을 서둘렀다.

비워진 가방만큼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코로나19가 원망스러웠던 시절, 우리는 산을 찾아다녔다.

등산이 우리 가족 공통의 취미가 된 것이다.

자그마한 동네 뒷산부터 가을 억새를 만끽했던 민둥산까지.

이후 5년째 봄과 가을, 그렇게 등산 메이트가 되어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이 등산을 하며 건강도 챙기고, 자연의 변화에 감탄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도 풀고,

무엇보다 정상에 올랐을 때,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끼길 바랐다.     


힘들어 짜증 내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이기에 

“다음엔 어느 산 갈까?”라고 묻지 않는다.

“무슨 라면 살까?”, “샌드위치야, 주먹밥이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순순히 메뉴 결정만 할 뿐,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싸, 걸려들었어!'


하지만 언제 달라질지 모른다.

'산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사람은 달라진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분명 우린 달라졌다.

봄에 왔을 때 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체격이 커졌고,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며, 나는 반년 더 늙었다. 그래서일까 저질 체력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을 산행이었지만, 일 년 뒤 나보다 더 커 있을 거북이 두 마리, 나의 등산메이트와 2025년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이가 다리를 움직이게 하라.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다리가 움직이며 작동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도 가만히 굳어버린다."

           - 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김종원 -


내년이 되면 다시 또 나의 등산메이트, 아이들의 다리를 움직이게 하리라.

더불어 50년째 쓰고 있는 나의 다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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