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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Nov 19. 2024

워킹맘, 양치기 소년 되다.

워킹맘도 잠시 콧바람 넣고 가실게요.

“엄마~ 나 저녁에 교육 있어서 조금 늦어.”

“어. 알았다. 마이 늦나?”

“아니. 많이 늦지는 않는데 지율이 양치랑 세수만 하고 재워줘”

“알았다! 너거 엄마 늦는단다. ” 뚝!

이것은 말입니다. 워킹맘과 친정엄마와의 짧은 대화입니다. 워킹맘의 말은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거. 짓. 말입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살아야 되니까요.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고요.


동장군이 올까 말까 밀당을 하는 것처럼 추웠던 어느 겨울날.

평소 사람 잘 챙기며 인정 깊은 한 동료교사가 2층 교실 앞까지 다가와하는 말.

“쌤! 오늘 나랑 같이 남포동 갈래요? 먹자골목도 가고 아이쇼핑도 하고 어때? 할머니한테는 교육 간다 하고!

 어때요? 고고! 하입시다”

“어? 안돼. 빨리 가서 지율이 봐야지.”

“맨날 그러는 것도 아니고 하루쯤 어때요, 쌤도 힐링이 필요하다”


힐링? 그게 뭐꼬? 워킹맘에겐 사치인 그 단어, 힐링.

그렇다. 출산부터 복직에 이르기까지. 고작 1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커피 한잔 조용히 먹을 여유도 시간도 없이. 복직을 한 후 적응할 틈도 없이 쓰나미처럼 밀려온 필수교육들을 순서대로 들어야 했고 퇴근 후에는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하고 재운 뒤 아이 이유식도 조용히 만들어 놔야 했다. (아이 먹는 것은 사서 먹이지 말자라는 나만의 똥고집이 있었다.) 또한 노처녀 히스테리인지 아닌지 삐뚤어진 동료교사와의 갈등과 각종 학부모의 민원, 상담, 원장님의 각종 서류들까지 줄줄이 소시지 비엔나처럼 묶여 나에게 결재서류를 내밀었다. 그런 나의 정신상태가 얼굴에 거울처럼 표시가 났던 것인지 동료교사의 한 마디에 마음이 출렁거리며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열지 말아야 했던 판도라의 상자처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더불어 나의 마음을 들켰나 싶어 화끈거리기도 하고 내심 동료교사의 마음씀씀이가 추운 날에 먹는 어묵국물만큼이나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보니 남포동, 서면거리를 활보했던 나의 싱그런 20대, 30대는 어디 갔던가? 젊음의 꽃을 피워 꽃향기를 거리마다 흩날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도대체 언제 가봤던 것인지 기억도 안 날지경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고요 속의 외침은 천사 VS악마에서 고민하는 나를 악마로 변신하는데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지옥에서 온 워킹맘이라고 할까? 오늘 하루인데 뭐 어때? 하고 애써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친정엄마에게는 양치기 소년이 되었고 남포동 밤거리를 걸음마 떼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활보하게 되었다. 어항 속에 갇혀있던 물고기가 바다로 나가면 이런 기분일까? 막혀있던 변기가 뚫리면 이런 기분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속이 뻥~! 뚫리는 이 기분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상. 쾌. 하. 다.

아~ 아득한 어둠이 깔린 밤거리를 활보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만 해봤다. 정말 꿈인지 진짜인지 모를 거리를 구름에 뜬 기분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때의 밤공기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히 잔존해 있다. 밤공기는 내 코로 들어와 새 숨을 불어주었고 처음 숨을 쉬는 아기 마냥 신선했고 달았다. 달디달고 달았던 밤양갱처럼.

선생님과 여러 옷가게를 들러 아이쇼핑을 하고 평소 입지도 않던 치마를 하나 사는 것으로 내 기분은 최고조가 되었다. 이미 집에 있을 사랑스러운 아이도, 친정엄마도 잊은 지 오래였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점점 무거워졌다. 미안함과 이기심에서 나온 양심의 고백이었다고 할까.

배고픔도 잊은 채 밤거리를 돌아다닌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밥 두 줄을 입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쉬운 일탈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때 먹었던 김밥의 맛이란 5성급 호텔에서 먹는 룸서비스만큼이나 특별했다.

아마 내 기분 탓이겠지. 미각을 잃은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만든 김밥의 맛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아쉬울 게 없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듯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조절하고 긍정적으로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가? 가끔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도 많은데 말이다. 고로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생각한다. 최고가 되기보단 최악은 되지 말자. 무엇이든 잘하려고 들면 마음에 짐을 두게 마련이고 최악은 되지 말자고 결심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최악만 피하자.


꼭 해야만 해, 이게 최선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앞만 보며 달려왔다. 내 앞에 마주한 일들은 쉼 없이 계속 돌아갔기에 박자를 맞추는데만 급급했다.  나를 돌아볼 여유는 남이 만들어준다는 큰 착각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한 번의 콧바람은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조금 못하면 어때, 천천히 가면 어때. 나에게 속삭이면서.

워킹맘은 설국열차가 아니다. 가정과 직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워킹맘은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하물며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도 한 번쯤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리지 않은가. 잠시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애매모호하지만 각자의 기준대로 잠시 쉬어가보자. 나를 돌아보고 나의 마음을 돌아볼 차례이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무엇인지 (커피? 맥주? 뮤지컬?)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지(아이가 꿈나라로 간 후, 출퇴근하는 시간 ) 고민해 보고 실천해 보자. 자, 그런 의미로 시~원한 맥주 한잔 따고 가실게요~

출처 - 그림에다/Grimeda 인스타그램


워킹맘은 또 양치기 소년이 되어 일탈을 꿈꾼다.

도둑질도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려운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부재중.

잠시 콧바람 쐬러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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