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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The substance) - 후기

by 비읍비읍

82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데미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라는 것을 우연한 유튜브 알고리즘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접했던 영상은 데미 무어(예전에 그 영화, 그 가십거리의 당사자인 그 데미 무어가)의 수상소감이었다. 과거에 자기 자신에 대해 낮게 평가했던 사람의 말처럼 살아왔던 날들을 이야기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 한계점에 자신을 가둬두어서 살아왔고, 그 한계점을 이번 영화에서 골든글로브 상을 타는 것으로 깼다는 내용이었다.


!! 이런 울림을 주는 수상소감이라니!? 그것도 내 기억 속 '아주 과거'의 데미 무어가 수상을 하면서 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관용어구적인 표현으로 비이커 속의 벼룩 같은 이야기 아니던가. 심지어 그 비이커를 다시 깨버리는 역경의 용사-가 연기한 역할이라니.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직접 봐야겠다는 마음먹기엔 충분했다. 영화가 무슨 내용으로 구성되었는지는 저쪽 구석에 구겨진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런저런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개봉이 되었고 주인공인 데미 무어의 수상소감에 대해서도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외로 스릴러와 공포를 즐겨보는 아내의 취향에 맞기도 하여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영화를 보기 전 국룰 행동인 네이버 영화 평점을 검색해 보았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까' 와 '빠'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극찬 일색인 평가부터 정신 건강한 사람만 보라는 둥, 고어한 내용에 대한 경고들도 있었다. 이 정도 사전 정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이제는 내가 직접보고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볼 차례였다.



줄거리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도입부는 주인공인 데미 무어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시작된다. 어느새 나이가 많고 인기가 많'았'던 주인공은, 본인 나이에 비하면 굉장히 잘 관리된 상태이지만 늘 어리고 예쁜 사람들과 비교를 당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노골적인 미디어만이 자신을 불편하게 했지만, 리즈-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넛지(nudge)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동요한다.


영화적 요소임을 감안하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로 주인공은 본질적으로 하나인 두 개의 생명체로 분리된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선문답처럼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잊지 마라'라고 하지만, 젊고 늙은 두 인물은 서로 생각이 다르다.

아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모든 선을 넘어버리는 것은 젊은 인물의 단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되긴 하니 늙은 인물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지금 당장!을 더 누리고 싶어 하는 젊은 인물이 선을 조금씩 넘을 때마다, 공생의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이토록 자극적이고 참신한 주제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금해하는 순간에 화면은 온통 피칠갑이 되버리고 영화는 끝난다.



나는 영화를 영화 자체로 즐기기도 하지만 분석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내가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한 데미무어의 '여우주연상'급 연기는 어디에 있는거지?


이 포인트로만 집중해서 본다면 한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영화 중반부에 옛 친구와 데이트 위해 화장실에서 마지막 꽃단장을 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같지만 확연히 다른 '젊은 인물'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인물'만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이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왔을때 '지난주를 누렸을' '젊은 인물'의 몸과 얼굴에 대해 크게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다. 비교를 하는 주체는 오히려 관객석에 앉아있던 나였다.


'아.. 잘 가꾸어도 엉덩이 라인이나 피부의 탄력도, 젊음이라는 그 자체는 상당히 차이가 크구나..' 라고 평가를 하며 말이다.


나갈 채비를 하는데 거울에 비치는 광고판 속 젊은 인물의 '젊음'이 자꾸만 자신을 비교하게 만든다.

나는 나야!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블러셔를 조금 더 세게 해 보았지만 이번에는 더 작은 거울로도 광고판이 보인다. 가슴을 너무 드러냈나-, 주름진 팔뚝을 롱 글로브로 가려볼까- 싶어 최종 정리를 하고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문고리의 그 작은 반사판으로 광고판이 보인다.


이때 화면 속에는 그녀의 자기혐오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상과의 비교에서 참패하는 비참함이 흘러넘친다.


너무 인상 깊은 장면이었지만, 이걸로 여우주연상을 주었나 싶었다. 그러기에는 약간 부족하지 않는지- 시상식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그 외에는 '데미 무어'라면 능히 해냈어야 할 연기의 향연이었을 뿐이었다.



젊음이 좋다는 건 너무 잘 알겠긴 하다.


젊은 인물 역할을 담당한 배우는 너무 신선한 마스크였고 젊음 그 자체를 참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찾아보니 내가 본 여러 작품에서 이미 얼굴을 알린 배우였다.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히피 패밀리였던 역할과, '가여운 것들'에서 엠마 스톤의 다음 실험체 역할을 했었던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젊음'이 포인트가 아니어서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컨셉을 잡고 나오니 배역과 정말 찰떡인 배우구나- 싶었다. 예전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전지현 배우를 우상시하기 위해 만든 '여친소'를 떠올리게 할 만큼 특정 대상을 여신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가슴과 엉덩이 어디로 하는지에 대해 한국과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가슴은 시원하게 까고 다니더라도 치마나 바지를 짧게 입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엉덩이를 더 섹슈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는데,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엉덩이가 참 많이 부각된다. 정확히는 엉덩이의 볼륨감과 가랑이 사이를 아주 노골적인 롱-테이크 방식으로 촬영한다. 감독이 엉덩이 성애자는 아닌지 의심하는 것을 넘어 서양권은 엉덩이가 이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하는 확신까지 들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핫팬츠를 아무리 짧게 입어도 크게 이슈 되지는 않지만 가슴을 더 많이 노출한다는 것은 온갖 연예 기사를 정복하는 수준으로 이슈가 된다. 우리나라 영화였다면 다이어트 비디오에서 'pump it up'을 외치며 스쾃을 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더욱 노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엔딩장면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자극적이고 참신한 주제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금해하는 순간에 화면은 온통 피칠갑이 돼버리고 영화는 끝나버렸다. 영화관에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유튜브처럼 10초 건너뛰기도 못하는 채로 그대로 폭력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에 노출되어 버렸다. 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관객들과 달리 노골적으로 젊음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감독은 연대책임지라는 듯이 고스란히 참교육을 시전했다.


물론 감독&각본을 기획한 사람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절절하게 알겠으나, 기승전결의 '결'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용두사미 식 영화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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