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 금남로에서 벌어진 탄핵 찬성과 반대 측의 집회 문제로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민주당 계열의 의원과 광주시장이 연일 광주의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며 연일 탄핵 반대 측에 맹폭을 가했으며, 쓰레기장에서 탄핵 반대시위를 하면 된다는 등의 조롱까지 나왔습니다. 거기에 역사 강사로 알려진 황현필 강사가 최근 탄핵 반대 집회 참석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전한길 강사를 비판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광주에서의 찬반집회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고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것을 두고 다행스럽다고 여기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얼마나 갈등이 심각한지를 알 수 있어서 우려스럽습니다. 거기에 최근 황현필 강사는 자신의 과거 수능강의에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이를 반박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황현필 강사(이하 황현필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는 과거 수능 강의에서 6.25 전쟁은 미국이 연출, 각본을 짠 미국이 의도한 전쟁이라고 이야기했으며, 미국이 무기 실험을 위해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했다는 등의 위험한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에도 이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이 영상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자 반박 영상을 올리게 되었는데요, 그의 반박 영상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따라서 황현필의 반박에 대한 비판과 학문적 연구 등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사실 황현필의 유튜브에 반박 댓글을 달았으나 차단을 당한 것인지 노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 이렇게 별도의 글을 작성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하나하나 반박할 예정이지만, 우선 애치슨 라인부터 이야기해 봅시다. 애치슨 라인은 흔히 한국이 미국의 최우선 방위에서 빠지게 되고 이로 인해 김일성과 소련의 침공결심을 하게 된 계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이 소련의 침공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선언자체가 애치슨이라는 이름이 있다 보니 또 하나의 오해를 낳게 됩니다. 바로 애치슨이 한국의 방위를 포기했다는 편견입니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쟁에 대한 피로도와 소련과의 대결구도로 가는 냉전체제, 거기에 군축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반도, 다시 말하면 미국,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미국 정부인사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이 미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나 애치슨은 소련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지 캐넌과 그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입장이 달랐습니다. 한국에 대한 원조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던 캐넌에 비해 애치슨은 적극적으로 한국을 원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캐넌과 애치슨의 의견 대립이 주는 의미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의견 대립은 한국의 지원과 방위에 대해 미국조차도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미소 패권 경쟁초기에 벌어진 미국의 실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 실수의 대가를 전쟁톡톡히 치룹니다. 전체적 맥락을 보지 못하고 특정 사실 하나에 집착하면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이에 트루먼 독트린 적용 국가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자 당시 방미 중이던 이승만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트루먼 독트린에 한국을 포함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여론도 동정적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스 1947년 3월 19일 기사에는 애치슨이 한국의 중요성을 언급한 이후 사설에서 한국은 그리스, 터키, 남동유럽만큼 세계평화에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한국은 동맹국이고 일본은 적국인데도 일본에는 공장이 돌아가고 한국은 부품이 없어 멈춰 섰다,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황현필은 이를 두고 미국의 의도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애치슨과 미국의 여론, 그리고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의 대립 등을 살펴보면, 이것은 미국의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의견이 정확히 합치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습니다. 이것을 미국의 실수라고 한다면 실수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애치슨은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기 전에 끊임없이 한국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이에 여론과 언론도 동조합니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미국 관계자들은 한국의 중요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미국의 의도라면 미국은 자국민의 생명을 남의 전쟁터에 밀어 넣은 학살자에 불과합니다. 더 나아가 6.25 전쟁이 진정 미국의 의도한 것이라면 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황현필은 이런 의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 그림을 봅시다. 여기서 황현필의 주장에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해도 개입하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완벽한 거짓이자 사실 날조입니다. 트루먼 정부에서 트루먼 독트린과 함께 애치슨 라인을 선포하자, 이승만은 장면 당시 외교부 장관을 파견하여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애치슨 라인은 우선 조건은 침략을 받은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방어를 진행하고, 이후 미군이나 UN군을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군비의 약세 속에서도 지연 전을 펼치고 낙동강을 방어해 냈던 국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설사 한국이 적화통일이 되더라도 미국과 UN에서 한국을 지원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황현필은 이런 부분들은 쏙 빼놓습니다.
또한 황현필은 애치슨 라인 덕분에 북한이 남침할 수 있었다며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도 사건의 인과관계를 전혀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애치슨 라인과는 별개로 이미 김일성은 남침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김일성을 자제시키려고 했던 것이 소련의 스탈린입니다. 만약에 정말로 이 애치슨 라인이 미국의 의도였다면 스탈린이 끝내 김일성의 전쟁을 승인했을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미국의 개입을 하기 전 압도적 화력과 물량으로 전쟁을 끝내는 편이 더 나았을 겁니다. 한반도라는 교두보를 잃은 미국이 소련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전쟁은 낙동강 방어선을 기점으로 역전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진 이후 중공군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소련군까지 개입한다면 완전한 3차 세계대전입니다.
정말로 애치슨 라인이 미국의 의도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그렇게 재빠르게 휴전협상을 진행할리가 없습니다. 소련에게 있어서 한반도 적화통일은 되면 좋지만, 안되더라도 상관없는 계륵과도 같은 지역입니다. 소련은 한반도 북부, 즉 북한만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치슨은 1947년 2월 국무장관대행 자격으로 한국문제해결을 위해 국무-전쟁-해군의 3부 조정위원회, SWNCC 산하에 한국문제특별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한(對韓) 정책 건의서를 마련한 보고서를 올립니다. 여기서 자유롭고 독립된 한국의 유지를 위한 적절한 보장의 확립은 미국에 정치적 중요성과 함께, 소련과 인접한 유일한 국가로서 그들의 독립을 지원해야 미국적 민주주의 개념의 유효성을 가늠하는 시험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한국은 미국에 있어서 공산권 남하의 방파제로 삼을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세계적 요충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서 한국에서 소련을 봉쇄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하면, 독일과 같은 지역에서 소련의 태도에 역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의도일까요?
또한 황현필은 미국의 의도이든 실수이든 미국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또 한 번 말을 잃었습니다. 이미 미국은 자신들의 국제적 정책의 실수와 실패의 대가를 충분히 치렀습니다. 자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타국의 땅에서 피를 흘렸으며, 한미수호방위조약을 맺어 대한민국을 전쟁의 위기를 억제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무상 경제 원조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이것으로도 이미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들의 원조와 우리 민족의 근면성실함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로 우뚝 발돋움했습니다.
필자는 역사를 가르침에 있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필자 역시도 치기 어린 시절 감정적 휘둘림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울분을 토하는 과거를 겪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현필은 도가 지나칩니다. 같은 맥락으로 탄핵반대의 선봉이 돼버린 전한길 강사에게도 필자는 같은 시선을 보냅니다. 양비론적 관점으로 보실 수도 있지만, 역사만큼은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한길도, 황현필도 모두 부족하지만, 황현필은 특히나 더 심합니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것도 자신이 내뱉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궤변 섞인 물타기를 하고 있기에 특히나 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참고로 필자가 편견의 역사라는 책을 집필하고 연재하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황현필 강사입니다. 그의 감정적이고 무조건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깨고 싶었습니다. 해서 앞으로 황현필의 영상에서 학술적 비판에 관련된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필자가 무조건 옳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류의 지적과 비판을 환영합니다. 황현필의 강의에도 옳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인정할 것입니다.
그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어떤 역사적 사관을 가지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그의 자유입니다. 또한 자신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 역시도 그의 자유입니다. 다만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그 절대 선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은 깰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그는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거대 유튜버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입 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나 가치중립적 자세가 필요하며 모든 의견과 가능성을 열어두어야만 합니다. 황현필에게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필자가 그를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현재의 황현필을 보고있으면 그는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완벽한 확신으로 인해 생기는 일입니다. 그는 건국전쟁 논란으로 문제가 되고 현재로서도 역사 강사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짜인 전한길에게는 토론을 요청하면서도, 그외에 자신의 논리에 반박하고 수도 없이 토론을 제의하던 유튜버 그라운드C의 토론 제안은 눈을 감고 무시합니다. 완벽한 이중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