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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Nov 14. 2024

2024.10.28.(월) 상담일기

우울했던 어제의 여파인지,

또는 소설 같은 꿈이 마음에 들어선 지,

유난히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었다.


결국 상담 시간인 11시가 다되어 일어났고,

아침루틴인 커피조차 마시지 못한 채,

허겁지겁 노트북을 켜 상담선생님을 마주했다.


1시간이라는 시간.


잠들기 전, 어제의 나는 참 우울했는데,

1시간의 상담이 지난 나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상담을 받는다고 매번 기분이 좋진 않다.

오히려 혼란스러울 때도, 더 우울해질 때도 있다.

실제로 지난주 병원진료를 받으며 상담을 할 때는 기분이 정말 안 좋았던 것 같다.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병원 선생님의 태도에서 나를 지겨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해주시다 보니 변하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쉬운 걸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기분이 다운되고 기가 죽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다르게 오늘 상담을 통해서는

설득이 되는 기분,

그리고 무언가 실행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는

나의 우울감에 대해서 다룰 때

그 감정에 집중하는 방향 말고

코칭의 방향으로 가도 괜찮을지

상담선생님께서 질문해 주셨는데,

그 질문이 무척 섬세하게 느껴졌다.


우울한 내가 공감을 바라는지,

또는 나아가길 바라는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고

이끌어가실 수도 있었겠지만,

겉보기에 그럴지라도

혹여나 다를 수 있는 나의 본심을 살펴주는

부드러운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괜찮았지만, 괜찮더라도 보살핌 받는 그 느낌은 참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이 우울감을 너무 많이 느껴왔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왔고,

그에 대해 나는 공감을 받기도, 응원을 받기도, 위로를 받기도 했다.


공감과 응원,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느끼는 부분은 결국 우울을 이겨내고 견뎌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공감과 위로, 응원 등이 필요한 순간은 지났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상담선생님께서 정확히 캐치해 주신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코칭의 방향으로 가는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된다.


물론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전 행복일기를 권유받고 그를 실천했을 때, 워낙 좋은 결과를 얻은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걱정을 뛰어넘는 기대가 나를 설레게 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받았던 응원과 위로, 여러 조언들이 쓸모없었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해보라는 조언을

정말 많은 분들에게 여러 번 권유를 받았지만,

마음이 움직인 건 오늘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있을 수 있던 건

이전의 수많은 권유와 거기에 담긴 마음들이 쌓여

지금 내가 설득당하고 결심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닐까.


경험을 통해 결정되는 시기가 있을 뿐,

이전의 나의 노력들, 주변인들의 노력과 관심들이 절대 헛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나는 우울증에 너무 오래 잠식되어 있었고,

20대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우울증과 함께했다.

그 사실은 나에게 인생을 헛되게 쓴 것 같은 후회와 슬픔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난 우울하니까, 무기력하니까,

다시 회복할 힘이 생길 때까지 조금만 더 쉬자.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이 생길 거야.’


그런 생각으로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나의 20대를 다 잡아먹은 우울증이 야속하며,

쉽사리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저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견뎌왔던 그 시간이 아깝고 후회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때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발버둥도 쳐보고, 쉬어도 보고,

의지도 해보고, 기대도 해보고,

그런 여러 시도를 해봤다 보니

이제야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인지한 것일 수도 있다.


아쉬울 수는 있지만 헛된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오늘의 상담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나는 오늘 상담을 통해 얻은 힘으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내진 못했다.


여전히 나는 해야 할 일을 또 미뤘고,

건설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어제의 우울한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비록 사소할 차이일지언정,

내일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다르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기를’

내일이 오는 것이 힘들기만 한 어제의 나.


‘내일에 믹스커피를 사야지.

사는 김에 마트에 가볼까.

마트에 투명하고 예쁜 공병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의 나를 계획하며 사소할지언정 기대하는 나.


이 작은 차이가 나의 하루를 좌지우지한다.

그래, 적어도 내일을 기다리며 잠들기 위한 지금.

나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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