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엄마에게 한 번도 꿈이 뭐였냐고 뭐가 되고 싶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그때 당시엔 여자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가치가 없다고 하던 시대이니, 학교만 제대로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며 가기 싫은 학교를 억지로 다녔는데 엄마는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는 게 꿈이었다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학교에 다니면 뭐 하냐고 시집만 잘 가면 되지라고 말했을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외할아버지는 자상하고 인자한 분이라고 칭찬만 하신다.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나는 참는다. 괜히 엄마 속만 상하게 될까 봐서.
다리가 불편한 엄마와 여행을 다니기란 쉽지 않다. 엄마가 먼저 부담스러워하시고 놀러 가면 '너희들은 놀아라 엄마는 여기 앉아 있을게'라고 말씀을 하신다. 다리가 더 불편해 지시기 전에 여행을 가자고, 많이 걷지 않는 곳으로 편한 곳에서 쉬다 오자고 겨우 설득을 했다. 엄마와 여행 중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엄마는 별로 말씀이 없으시고, 내가 물어보는 말만 대답하시는 편이라서 엄마의 마음을 잘 읽어 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본격적으로 '엄마이야기 듣고 싶어'라고 시작을 해봤다.
엄마는 수줍어하면서 다 지나서 생각도 안 난다면서 할 말도 없다고만 하셨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여쭤보았다.' 엄마 학교 다닐 때 짝꿍 이름은 뭐였어? 제일 친했던 친구이름 지금도 기억해? 공부 잘했어?'등등 쉬지 않고 질문을 해됐다. 엄마는 드디어 입을 여시고 대답을 조금씩 해주셨다. 다리가 불편해서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운동장 구석에 앉아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앉아만 있었다고 하셨다. 얼마나 달리고 싶으셨을까? 얼마 나 반듯하게 걷고 싶으셨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엄마가 살고 싶던 삶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원하는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고 하시는데 내 눈엔 꿈도 희망도 없는 꿈처럼 느껴져서 괜히 엄마의 마음이 많이 서글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셨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이 편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엄마의 꿈을 지지해 드렸다.
'엄마가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다행이지 뭐'라는 말씀을 드렸다.
엄마에 대한 애틋함, 서럽고, 무섭고, 억울했을 것 같다고 지레 짐작하며 엄마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