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던 복도 끝에서, 익숙한 사람과의 짧고 무성 영화 같은 조우는 삽시간에 끝이 났다. 그럼에도 시선 끝에 남은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마음 한쪽에 명료한 선이 그어지는 이 경험은 놀라움을 준다. 사람을 향한 첫 장면이 이토록 가볍고 빠른 방식으로 시작되며, 그 가벼움이 때로는 영속적인 판단을 불러온다는 모순 앞에서 우리는 늘 서 있다.
깊은 이야기를 알기 전, 우리는 존재의 외곽에 머무르는 표정을 먼저 읽는다. 그 외곽은 때로는 깊은 우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얕은 수면에 비친 반영에 불과하다. 인간의 외곽은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으며, 가장 얇은 지층이나 임시 건축물의 표면과 같다. 발걸음의 리듬, 어깨선의 무게, 말끝의 짧은 호흡 같은 눈에 잘 잡히지 않는 움직임들이 초반의 판단을 이끌어내고, 우리의 뇌는 이 조각들을 빠르게 취합하여 '그 사람'이라는 임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임시 판단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얇은 막처럼 쉽게 투과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금세 형태가 바뀐다. 겉의 얇은 막이 벗겨지고, 그 아래쪽의 기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진다. 심리적인 시간이 물리적 거리보다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실제 삶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순간들은 이 미약한 판단의 취약성을 증명한다. 스쳐 지나갈 때는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졌던 이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따스함과 섬세한 배려를 지닌 존재로 다가오기도 했고, 금세 마음을 열었던 이가 갑자기 견고한 장벽을 쌓고 멀어지기도 했다. 나는 이 역설적인 경험들을 통해 사람이 지닌 본질은 한 장면에 담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깊이는 한순간에 드러나지 않으며, 시간이 쌓여 갈 때 비로소 조금씩 형태를 드러낸다.
우리의 시대는 겉을 향해 격렬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이 흐름은 인지적 판단의 가속화를 불러왔고, 손 안의 작은 화면은 그 속도를 더욱 자극하는 기폭제가 된다. 화려한 필터와 완벽한 각도로 포착된 타인의 삶을 우리는 단면적으로 소비하며, 이면의 복잡성과 고독을 생략하는 데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인 경험을 통해 '멈춤'의 힘, 즉 시간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늦추는 생각의 멈춤 지점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SNS의 환한 미소 사진 뒤편에 있던 지인의 희미하고 아득한 시선처럼, 겉의 장면은 얼마든지 다르게 포착될 수 있으며, 그 안쪽의 마음의 기색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가 많다. 진실은 겉의 표면 장력에 의존하기보다, 존재의 내부 밀도를 통해 천천히 자신의 무게를 증명해 나가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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