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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해지는 것입니다

경험을 감각의 데이터로 바꾸는 어른의 브랜딩

by 정성균

노화(老化)는 쇠퇴가 아닙니다, 정밀한 신호입니다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서 여운이 스며오는 때가 있습니다. 오래갈 인연인지, 혹은 거리를 두어야 할 대상인지 몸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저는 그 기척을 쇠퇴의 징후로 여기지 않고, 내면 깊은 곳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가 내미는 정밀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늘 불안이 앞섰습니다.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으면 믿지 못했으니까요. 시간은 아껴야 할 자원이었고, 삶은 끊임없는 계산과 판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오후에 당도한 지금, 저를 지탱하는 힘은 화려한 이력서 너머에 존재합니다.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과 부딪치며 체화된 감각들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저는 이 감각을 ‘나만의 도서관’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기계는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을 산출하지만, 미세한 표정의 변화나 공기의 흐름까지 읽어내지는 못합니다. 오직 몸으로 겪어낸 세월만이 그 예리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험은 과거의 유물로 남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을 감지하고, 더 나은 선택지로 이끄는 안전장치로 작동합니다. 투박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삶의 원본. 이제 그 도서관의 문을 열어보려 합니다.


“시간은 나를 낡게 하지 않고, 더 정확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처는 삭제되지 않고, 고유한 무늬가 됩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자산은 '버티는 힘'입니다. 이 힘은 살아온 햇수보다, 그 시간을 몸으로 겪어내며 남긴 흔적에서 비롯됩니다. 버틴다는 건 멈춰 서 있는 모습과 거리가 있습니다. 폭우 속에서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어지듯, 혼란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움직임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상은 드러난 결과로 사람의 값을 매기곤 합니다. 하지만 삶의 진실은 과정의 틈새에 숨어 있습니다. 실패를 견딘 밤,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생채기, 그 자리에 돋아난 굳은살.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 속에 숨은 진짜 알맹이들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성분을 이룹니다. 습도계는 공기 중의 수분만 읽지만, 우리 몸은 비 오는 날의 흙냄새와 스무 해 전의 그리움까지 기억해 냅니다.


상처가 남긴 자리는 흉터이기보다, 다시 힘을 주어야 할 곳을 알려주는 표식에 가깝습니다. 눈을 감고 지난날을 더듬어 보십시오. 그때의 고통도 지금은 특유의 향기가 되어 당신을 감싸고 있을 것입니다.


“아픈 기억은 다시 일어설 곳을 가리키는 선명한 나침반입니다.”


타인의 떨림을 읽어내는 눈이 생겼습니다


경험의 가치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절감한 건 지난주였습니다. 서른 중반의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은 직후였습니다. 구석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은 흙빛이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따뜻한 차를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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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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