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릅니다. 손끝으로 매듭을 다듬습니다. 세탁소 비닐을 벗겨낸 셔츠 깃이 목을 바짝 누르는데, 작은 자극이 오늘의 역할을 준비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지금부터 ‘정 부장’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여야 하며, 맡은 일에 스스로를 맞춰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스칩니다.
목에 파란색 사원증 줄을 겁니다. 딸깍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깨가 저절로 굳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울 속 모습이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찰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갑니다.
출근길 도로는 막혀 있고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앞차의 붉은 불빛이 길게 이어져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오랜 시간 그 불빛을 바라보면 기계 속에서 제 역할을 채워 넣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분이 깊게 스며듭니다. 창밖 강물은 조용한 흐름을 이어가고, 차창에 비친 얼굴은 바짝 마른 흙처럼 푸석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무실 자리에 앉는 순간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칸막이 너머에서 들리는 자판 소리, 짧은 한숨, 여기저기서 울리는 전화벨이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상사의 날카로운 말이 들려오면 책상 아래에서 손을 꽉 쥡니다. 표정을 지키기 위해 힘이 들어갑니다. 이곳에서는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회사가 바라는 성과가 기준이 되고, 다른 감정은 깊숙이 감춰집니다. 하루 동안 마음은 가방 속 어두운 자리에 놓인 채,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지냅니다.
금요일 저녁, 현관문을 닫고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떼어내는 순간 숨이 깊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금세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듯합니다. 건전지 불빛이 깜박이는 순간처럼 가슴이 흐릿합니다. 그래서 주말 아침이 되면 잃었던 호흡을 되찾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정장은 옷걸이에 걸어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가벼운 작은 가방을 메고 도심의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주말의 발걸음은 10년 전의 기억에서 비롯된 흐름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날 회사에서는 은퇴를 앞둔 선배님의 송별회가 열렸습니다. 평생 회사를 지켜온 분이고, 한때는 누구보다 기세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선배님의 책상을 정리하며 라면 상자 두 개를 옮겼습니다. 오래된 슬리퍼와 빛이 바랜 가족사진, 낡은 수첩 몇 권이 다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놓여 있던 네모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선배님의 지난 세월이 비워진 자리로 남은 듯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선배님이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정 부장, 회사 너무 믿지 마. 문 밖으로 나오면 그냥 동네 아저씨더라. 직함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날 밤은 피로가 깊게 쌓여 있었고, 거의 마시지 않던 술을 조금 들이켜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세 시가 되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꿈의 자취가 전혀 없었는데 심장은 귓가 가까이에서 울리는 듯 크게 뛰었습니다. 방 안은 고요했고 멀리서 냉장고가 낮게 떨리는 소리만 이어졌습니다. 천장 무늬가 눈에 들어오다가 낮에 보았던 선배님의 빈 책상이 떠올랐습니다. 눈앞으로 그 모습이 겹쳐지며 잠결에 묻어두었던 생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숨이 가빠졌고 손끝이 떨렸습니다. 이불을 걷어내고 앉아 있었지만 배 속 깊은 곳에서 허전한 감정이 타오르듯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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